추석날 핸드폰에 알림이 떨어졌다. 예상 밖의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용은 정말 단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잘 지내?" "추석 잘 보내." 한두 줄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글이 하루 종일, 아니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발신자는 2, 3년 전에 결혼한 전 연인이었다. 정말이지 좋아했던 사람이고, 상황 탓에 스스로 밀어낸 상대였다. 그토록 힘들었던 그 관계를 뒤로하고 진정 오래됐다고 생각했는데, 명절이 되자마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상대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고, 저쪽의 메시지는 단순한 계절 인사일 테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한두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와 마음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적으로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는 다른 가정을 꾸렸고, 이 연락과 자신의 미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상대가 이렇게 물었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도 않고, 연락하지 않았다면 더 나아졌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감정은 그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꺼낸 건 상대의 현재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향한 생각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었다. 왜 그때는 조금만 더 용감할 수 없었을까. 왜 그렇게 쉽게 겁을 집어먹었을까. 차라리 한 번이라도 부딪혀봤으면, 정면으로 싸워봤으면. 뒤로 물러섰던 자신을 탓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발짝만 더 앞으로 나갔으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더 일찍 자신이 원하는 삶이 뭔지 알았으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명절이라는 시간이 감정을 지표면으로 강제로 끌어올린다는 걸 아는가. 일상의 틀이 깨지면서 평소에 눌러뒀던 것들이 의도치 않게 떠오른다. 혼자라는 절감,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내린 결정에 대한 회의, 아직도 남아 있는 후회들. 단 한 줄의 안부 메시지가 이렇게 큰 파동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대의 말 한 마디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커뮤니티 게시글의 작성자도 정확히 이 지점을 캐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보다 그때의 제 모습이 더 많이 생각난다"고. 자신의 감정 대상이 정말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알면서도 마음은 흔들렸다. 그게 가장 답답하고 외로웠던 부분이었다.

결국 몇 시간을 고민한 끝에 화면을 켰다. 상대에게 "벌써 추석이네. 건강하고 좋은 일 있기를 바란다" 정도로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지금의 자신에게 이 연락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절제였다. 짧은 문장에 담긴 무거운 균형. 더 이상 담지 않기로 한 결정.

명절이 드러내는 감정의 정체는 생각보다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떠난 사람이 원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때의 자신과 만나는 경험인 것으로 보인다. 용기 내지 못했던 시간, 피했던 결정, 당시엔 몰랐던 진정한 바람들.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후회가 한 번의 메시지로 다시 떠올랐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 필요한 건,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부터 명확히 아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싸움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고, 거기서부터 뭔가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것. 그것 자체가 아마 이 글이 남기는 질문일 테다.


📌 원문 발췌

오히려 연락이 안 왔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한 번 툭 건드리니 그 사람보다 그때의 제 모습이 더 많이 생각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