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결혼을 마치고 10년 이상을 혼자로 지낸 여성이 있다. 배신감과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만 그토록 오래 걸렸고, 혼자만의 삶이 편해 보였으며, 재혼은 감히 고려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만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인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중요한 건 남편이 첫 번째 결혼에서 아내를 잃은 '사별 돌싱'이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혼 남성이라면 또 다른 배신을 당할까 두려웠던 터에, 사별이라는 명목이 마음의 문을 열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이 진심으로 기울여준 노력도 그 신뢰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재혼을 결심하기 직전, 남편이 전처의 제사를 홀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고, 손을 내밀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사 준비를 함께한 것으로 전해진다.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나의 배려, 그 정도라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 시작을 함께 준비하는 성의 있는 신부의 몸짓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그 자발적인 도움이 이후 시댁 관례의 '선례'가 되어버렸다. 재혼 이후 명절이 올 때마다 시어머니는 차례상 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나란히 전처의 생전 사진을 올렸다. 이 지점에서 구조적 문제가 시작된다. 기제사와 명절 차례는 엄연히 다른 의례다. 기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지내는 추모 제사지만, 명절 차례는 현 가족 단위가 함께 지내는 의례다. 따라서 현 배우자가 없는 전 배우자를 명절 차례에 올리는 방식은 예법상 일반적이지 않다. 이건 당사자들 사이에 혼전에 충분히 협의되고 합의되어야 할 문제인데, 이 사건에서는 '자발적 도움'이 곧 관례로 고착된 셈이었다.
더 큰 충격은 제사 당일에 터졌다. 낭독을 해야 한다며 시어머니가 미리 적어준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안에 전처를 "형님"이라 칭하는 대목이 있었다. 자신의 시누이처럼 위치지은 것이었다. 예절상 기묘한 호칭이었다. 가슴이 철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입을 다물었다. 현처가 전처를 질투해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시어머니의 우려가 자꾸 떠올랐고, 시어머니를 화나게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저 "우리 집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배려가 의무로 서서히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재혼 후 4년이 지났다. 지난 추석, 상황은 한 단계 더 진행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제사가 끝날 때까지 방에만 있으라는 말을 남편이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은 그것도 "우리 집 방식"이라고 넘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4년간의 축적이 폭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제사는 괜찮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을 함께 추모하는 건 당연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죽은 시아버지와 전처를 현 배우자와 같은 명절 차례에 올리는 것은 결이 다르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항렬도 안 맞는다고, 예법도 맞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통보했다고 한다. 변화가 없으면 이혼을 고려한다고.
현재 당신은 밥을 차리고 시어머니께 음식을 챙겨간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머니는 80대이지만 폐를 끼칠 걱정만 하고, 남편도 애정 어린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집안 방식"이 당신을 홀로 고통받게 하고 가족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재혼 가정에서 전처 추모를 어느 선까지 현 배우자가 함께할지는 애초부터 명시적 합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방의 관례가 상대방의 의무가 되는 구조 속에서는 진정한 가족애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이 아닐까.
📌 원문 발췌
혹시 사별한 전처가 사이좋은 우리를 질투해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나 두려워 남편과 시어머니 뜻대로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번 추석엔 저에게 제사 끝날때까지 방에 혼자 있으라더군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