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나오는 "야, 이 친구 정말 믿을만해"라는 표현과, 무릎을 꿇고 국민 앞에서 대통령 후보로 자신을 내세우는 발대식에서 나오는 "나는 ***를 친구로 두고 있다"는 표현. 겉으로는 모두 친분을 언급하는 말이지만, 놓인 맥락이 만드는 무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발대식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나는 이 위치에 설 자격이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표정, 카메라, 언론—모든 것이 그 말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대통령 감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곧이어 "***를 친구로 두고 있다"는 발언이 흘러나온다면, 그것을 단순한 친구 소개로만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술자리의 친분 자랑은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것이 목표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우리 이 친구"라고 표현해도 그건 개인적 신뢰를 드러내는 수준으로 머물 수 있다. 하지만 발대식의 발언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공식적 자리에서 자신의 자격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거론하는 것은, 그 인물의 위치와 신뢰도를 빌려와 자신을 증명하는 수사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이름이 내 신뢰도를 담보하는 도구로 읽혀지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그 발언이 담긴 영상을 봤을 때는 그다지 뜻하는 바가 와닿지 않았다. "아, 그 유명한 분과 친하다는 얘기네"라고 넘어가기 쉬웠다. 발대식에서의 정치인 발언이야 흔하지 않은가. 하지만 며칠 뒤, 혹은 몇 주가 지나면서 그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뭔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을까.

***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도 한 몫한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위치,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의 힘. 단순한 선후배나 동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그것은 자동으로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저 정도 위치의 사람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신호로 대중에게 읽혀지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신호가 발대식이라는 공식 자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 무게를 배로 만드는 것 같다.

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도 가끔 그 발언이 생각난다. 공식 석상에서 개인적 관계를 자격의 증명으로 내세우는 그 구조 자체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라는 단어가 술자리에서는 따뜻함과 신뢰감을 담지만, 발대식 무대에서는 자신의 위상을 측정하는 기준점이 되어버렸다는 깨달음. 같은 말인데도,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시간, 공간, 청중, 의도, 무게감—이 바뀌니 발언 자체의 성격도 달라진다는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요즘 비슷한 발언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그 사람이 정말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관계인지, 아니면 자신의 자격을 높이기 위해 남의 이름을 자산처럼 빌려 쓰는 것인지. 물론 양쪽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술 한 잔 기울이며 나누는 친분의 무게와 발대식 무대에서 선포하는 친분의 무게가 어떻게든 다르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가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발대식에서 대통령 감이 된다 말하는 순간에 그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으니 나는 감이 된다 라는 워딩이... 저 영상을 처음 봤을때는 아니 뭐 유명한 사람인가? 했었는데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새삼 더 그런거 같고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