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책임 철학을 가늠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권에서 널리 쓰이는 한 관용구가 그것인데,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면 한국 정치판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The buck stops here'라는 표현부터 출발해 보자. 이 말이 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뜻이 되었는지는 포커 같은 카드 게임의 역사와 닿아 있다. 포커판에서 'buck'은 현재 판을 진행하는 플레이어의 차례를 표시하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칼 손잡이의 뿔 장식 따위가 이용되곤 했는데, 어떤 플레이어가 자기 차례를 넘기고 싶으면 이 표식을 다음 사람에게 건넸다. 이를 'pass the buck'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표현은 게임을 벗어나 일상 언어로 확산됐다. 'Pass the buck'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고, 현재도 직장과 정치 현장에서 자주 들린다. 누군가가 책임을 회피할 때 "그는 계속 buck을 넘기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 영어에서 이 관용구는 단순한 책임 회피를 넘어 '책임감 부재'의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정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대 방향의 선언이 바로 'The buck stops here'다. '더 이상 여기서 책임을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이 자신에게 멈춘다는 의미다. 최고 지도자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포커판에서 흘러나온 단어가 정치 언어로 진화하면서 지도자의 책임 의식을 가장 간결하고 강렬하게 담아내는 문구로 자리 잡았다.

이 문구의 상징성은 미국 대통령 ***의 책상 위에 놓인 팻말로 구체화됐다고 전해진다. ***은 국가의 최고 책임자로서 모든 결정의 무게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자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 팻말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도자의 책임 철학을 상징하는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국 정치인들이 이를 선례 삼아 자신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이 표현이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리더십의 핵심 가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표현의 보편성은 국제 외교에서도 드러났다. 최근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물품 중에는 동일한 문구가 새겨진 팻말이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최고 책임자가 지녀야 할 태도를 메시지로 전하는 외교선물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리더에게 '당신도 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문화적 기대를 담아 전달한 것이라고 봐도 된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 현장은 어떨까. 한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특정 정책이나 결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누군가 결정을 했겠지요"라는 식의 답변이 나왔다는 것으로 보인다. 책임을 자신에게서 분산시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팻말에는 명확한 '나'가 있는데, 기자회견에는 모호한 '누군가'만 존재하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따랐다.

같은 표현이 역사와 현실에서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가 있어도, 실제 말과 행동으로는 'pass the buck'을 반복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