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게시글 하나를 마주친 순간, 강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그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인식하는 순간, 자동으로 벽을 세웠을 것 같다. 이렇게 쓰면 댓글 폭주에 논쟁만 되겠지, 혹은 지금 이 분위기에서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겠지 하는 체념.

음주운전 뺑소니에 대한 언급이 나왔을 때였다. 누군가는 "예전엔 시대가 그랬잖아", "요즘만 해도 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시절엔 다들 그런 정도는 괜찮게 봤다"는 식의 설명을 꺼냈다. 글쓴이는 그런 말들을 봤고, 마음속으로 분노했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자신은 친척을 통해 그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음주운전 뺑소니는 누군가의 목숨이 실제로 위험에 처해지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의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회복이 복잡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과거 어느 시대든, 그 순간에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선택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는 논리가 피해자 가족 앞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이 글쓴이가 글 속에서 던지고 싶은 것 같다. 용서가 안 된다는 표현 뒤에는, 그런 설명들이 자신의 고통을 얼마나 흐릿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 맥락론 자체는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역사적 관점에서 과거 사회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성숙한 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가해 사실을 상대화하는 순간, 구조가 역전된다고 봐야 한다. 피해자는 배경으로 사라진다. 그의 고통은 "그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글쓴이의 관점에서 이 순간이 바로 2차 가해라는 지점인 것 같다.

더 복잡한 것은,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공감할 만한 입장에 있을 때다. 누군가의 도덕적 잘못을 감싸는 언어는 자연스럽게 소환된다. 정치적 연대감이 도덕 판단보다 앞설 때, "그래도 그 사람의 다른 업적을 보면", "현재의 엄격한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할 수 없다",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이 정도는 흔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쉴드가 나온다. 글쓴이가 "정치 묻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쉴드가 나오는 게 어이가 없다"고 한 부분이 바로 이를 지적하는 것 같다. 가해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정치적 색깔에 따라 유연해지는 순간, 피해자는 더욱 고립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음주운전 뺑소니는 특정 커뮤니티의 게시글 두어 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더 많은 피해 사건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저보다 심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많을텐데"라고 한 말은, 자신의 경험이 빙산의 일각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그 피해자들은 사고 이후에도 장기간 심리적 충격과 싸운다. 운전 공포증, 수면 장애, 신체 통증 등은 문서화되지 않은 채 개인의 일상에서만 반복된다. 그리고 사건이 공개되거나 커뮤니티에서 언급될 때,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해줄 목소리가 아니라 가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예전엔 그랬어", "모두가 그런 시대였어"라는 말은 피해자의 현재의 고통과는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외상은 과거형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매 순간 신체와 정신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의 과거, 그를 둘러싼 사회적 입장, 시대적 배경. 이 모든 것을 성숙하게 이해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해가 피해자의 존재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이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관점이 있다. 글쓴이의 말들은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과거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가.


📌 원문 발췌

음주운전 뺑소니로 진짜... 목숨이 위험했던 친척을 둔 입장에서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데... 정치 묻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쉴드가 나오는 게 어이가 없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