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신군부 내 핵심 인사로 알려져 있다. 1980년 ***에서의 진압 작전 과정에서 중요한 지휘 계통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 기록에 남아 있으며, 이후 내란죄 등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신군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한 시기의 군사적 의사결정과 실행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다수의 역사 평가에서 그렇게 기술되고 있다.
***의 사망 소식이 포털 뉴스로 전해지자 댓글 섹션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한쪽에서는 '잘 뒤졌다'는 직설적인 비난이 베스트 댓글 상단을 차지했고, 다른 쪽에서는 '구국의 영웅이 영면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식의 추도와 경의를 담은 댓글들이 상단에 올랐다. 같은 인물의 죽음을 두고 비난과 추도가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은 단순한 온라인 여론 싸움 이상의 의미를 드러냈다. 그것은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1980년대 일부 사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여전히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같은 과거를 놓고 '학살', '국난 극복', '강력한 리더십', '독재'라는 완전히 다른 언어로 불리우는 현실이 바로 그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신군부의 최고 지도자인 ***의 경우와도 맞닿아 있다. ***도 생전에 내란죄 등으로 법적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그 시대의 필요한 선택이었다'거나 '강압적 통치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에서다. 신군부 인사들 중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동시에 일부에서는 '구국의 영웅'으로 추모받는 현실. 이는 과거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5·18을 포함한 한국 현대사의 이 부분이 왜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대 간, 진영 간 역사 인식의 차이'로 설명된다. 학교 교육을 받던 시기, 정치적 지향, 그리고 평상시 노출되는 언론 생태에 따라 동일한 역사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나이 40대 이상은 당대를 경험한 세대이거나 그 기억이 가족사로 남아 있고, 30대 이하는 역사 교육과 각종 콘텐츠를 통해 간접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다. 더욱이 진영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한 '공식 서사'가 다르면, 그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포털 댓글의 양극단이 그 거리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 간극이 얼마나 깊고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결국 한 인물의 죽음조차도 '역사적 평가'가 우선되는 사회. 신군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여전히 미완된 채 사회 구석곳에서 다시 불거지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한국 사회 전체가 현대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 전승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이 사망했습니다. 신군부의 수괴인 ***처럼 천수를 누리고 죽어서. 베스트는 '잘 뒤졌다'이지만, '구국의 영웅이 또 영면했다'는 등의 찬사가 담긴 댓글들이 가득했습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