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의 그 새벽은 특별히 길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글쓴이는 하루종일 문상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족의 입장에서 주어진 모든 절차와 예식을 따라가야 했고, 마음 어디쯤엔가는 계속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충격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한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글쓴이를 끌어안으며 함께 울어주었다. 말을 섞지 않고도 함께 있어주는 그 순간, 손을 꼭 잡아주던 그 감정이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날 밤, 새벽 무렵, 글쓴이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가 힘들어서 손가락이 자동으로 SNS 앱을 켰던 것 같다. 장례식장의 침묵, 초인종 소리, 영정사진을 보는 것조차 힘든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음을 놓을 곳도 없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계속되는 그 시간. 그리고 화면을 스크롤하던 그 순간, 글쓴이가 본 것은 그 친구의 스토리였다.

친구와 자신의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거기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사진이었다. 아버지와의 평화로운 시간을 담아낸 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스토리에 담긴 텍스트는 글쓴이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따라 보고싶었던 우리 아빠" 같은 내용이 거기 있었다. 친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 순간을 담아낸 것이었다.

그 순간, 글쓴이 가슴에서 무언가가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런 악의 없이 자신의 아버지와의 행복한 순간을 공유한 친구에 대해, 글쓴이는 미운 감정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친구가 뭘 올리든 그건 친구의 자유였다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가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타이밍과 맥락이 문제였다는 것이 글쓴이의 감정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글쓴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영원히 잃었다. 동시에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SNS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 대조는 너무나 날카로웠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타이밍의 무정함이 모든 것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친구가 얼마나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었는지는 이 순간 상관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벽의 장례식장에서, 글쓴이는 영정사진 앞에 혼자 앉아 한동안 울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눈물이 난다는 그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해당 글에는 많은 댓글을 통해 공감의 반응들이 달렸다.

이 글이 주목받는 이유는, 친구의 행동이 명백한 악의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친구를 완전히 욕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더욱 복잡하고 깊은 감정이 전해진다. 위로와 상처가 같은 사람에게서 같은 날 동시에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는 아무런 의도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맥락과 타이밍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글의 메시지로 읽혀온다.


📌 원문 발췌

나 끌어안고 엄청 울어주고 위로해주고 갔는데 그날 자기 아빠랑 사진 찍어서 스토리 올렸더라고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