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 차. 그동안 많은 싸움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지 않은 상처도 입었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달랐다.

그날도 다투는 와중에 입에서 나온 말이 있었다. '이렇게 살 거면 정리하자'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순간적인 말은 아니었다. 몇 년을 눌러온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거였다. 손도 덜덜 떨렸다. 말을 뱉고 난 뒤 느껴진 건 후련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던진 첫 마디가 모든 걸 끝내버렸다.

"그래서 위자료는 얼마 생각하냐?"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잡아두려는 손짓도 없었다. 그저 돈 계산이 먼저였다. 바로 그 다음은 "넌 나가는 거면 이 집 보증금은 내 명의니까 알아서 해"라는 말이었다. 결혼할 때 본인이 들여놓은 보증금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사이, 시어머니는 벌써 연락을 받고 있었다. "저 여자가 자꾸 발작하듯이 이혼하자고 협박한다"는 식의 말을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 둘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제3자를 끌어들이는 방법. 이건 대화를 회피하는 차원을 넘어, 이미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정의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시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결혼이 애들 장난이냐"는 훈계였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그 말을 꺼냈는지. 무엇이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 문제가 뭔지. 한마디도.

연애 때부터 이랬다는 생각이 든다. 싸우면 제대로 대화가 안 됐다. 본인이 서운한 걸 이야기하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 원하는 게 뭔데"라고 먼저 몰아붙였다.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럼 헤어지자"고 극단화를 가장 먼저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하면 나아지겠지 싶었던 게 한심하다.

신혼여행에 간 호텔 방 온도 때문에 두 시간을 싸웠다. "나 춥다"고 했을 때의 답변은 "그럼 넌 참으면 되지, 왜 나까지 더워야 하냐"는 말이었다. 그 순간을 놓쳤다. 그때 알아봤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 몸살로 사흘을 누워 있었다. 그날 죽 한 그릇도 끓여주지 않고 회사 사람들과 골프를 갔다. 돌아와선 "아프면 병원 가면 되지, 왜 집에서 유난이냐"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본인이 장염에 걸렸을 땐? 새벽 두 시에 깨워서 약국을 찾아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돈 문제도 지겹다. 생활비는 전부 본인의 카드로 빠져나간다. 그럼 그 사람의 월급은? 수년째 어디 쓰는지 공개를 하지 않는다. 명절이면 시댁 갈 선물도 본인이 사간다. 시댁 김장이라도 가는 날엔 허리가 나가게 일을 한다. 반대로 본인의 친정 일에는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다. "힘들다"고 한 번이라도 하소연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요즘 세상에 이 정도면 편한 거 아니냐. 남들은 이것도 참고 산다."

현재 상황은 냉전인 것으로 보인다. 이혼을 꺼낸 지 3주가 지났다. 그 뒤로 말 한마디 안 섞는다. 밥도 따로 먹는다. 먼저 사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주변 반응도 힘들다. "애도 없는데 뭐 하러 참냐"는 말. 엄마는 "이혼녀 소리 들으면서 어떻게 살 거냐"며 만류한다. 시댁은 이미 본인을 "이상한 여자"로 낙인을 찍어버렸다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마음이 굳어간다. 가장 아프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남편이 단 한 번도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거다. 만약 그 질문 하나라도 있었다면 마음이 이렇게까지 닫혀있지 않았을 거다. 매일 밤 이 생각만 하다 잠든다. 이 결혼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꺼냈던 말이었는데. 돌아온 게 위자료 계산과 시어머니 전화라니. 정말, 그 질문이 그리웠다.


📌 원문 발췌

첫 마디가 그래서 위자료는 얼마 생각하냐였어요. 미안하다도 아니고 잡지도 않고 돈 계산부터 하더라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