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은 읽는 그 순간 뭔가를 사로잡는다. 단 세 줄의 문장이 평생을 압축한 철학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언어의 신비로운 측면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작가 ***의 묘비명이 바로 그런 문장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이 말인 것으로 보인다.
***는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 소설 속 조르바라는 인물은, 사회의 관습과 틀을 거부하고 순전히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따라 사는 남자다. 타협 없는 자유인의 삶을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그 인물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그리고 ***의 묘비명은, 정확히 그 소설의 영혼을 한 문장으로 증류한 것 같다. 더 놀라운 건, 그 묘비명 때문에 그는 당시 종교적 논란을 감수해야 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 문장을 지웠다.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 문장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나의 묘비명은 뭘까? 기독교 전통에서 묘비명은 죽은 자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 한 문장이 그 사람의 전부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내가 죽을 때, 돌 위에 새길 만한 문장이 정말 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지킨 신념, 혹은 후회 없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정말 있을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말이 뭘까.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다 보면, 문득 이상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한 독자가 표현한 그것이다—'화장하면 묘비가 없다'는 것. 단순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깊은 함의가 있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돌 위에 글을 새길 곳이 없다. 이름을 기록할 자리도 없다. 지문도 남지 않는다.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일단 서글프다. 존재했던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그 자취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욕망을 빼앗아 간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후련해진다. 기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또 다른 해방감이 아닐까. 누군가의 기준이나 판단에서 벗어난, 순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사라진다는 게.
우리는 보통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망으로 산다. 이름, 업적, 생각, 영향력, 기록. 하지만 만약 그 모든 것이 남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무(無)로 돌아간다면? 그럴 때는 오히려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느낌도 든다. ***가 "나는 자유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누군가는 조용히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자체를 삶의 한 방식으로 택할 수도 있다.
기록으로 남는 삶만이 의미 있는 삶은 아니다. 감각으로만 남는 삶도 있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한 윤곽으로 남는 것. 어떤 책 한 권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몰래 바꿔버리고 조용히 책장에서 사라지는 것. 그렇게 무언가의 일부가 되다가, 시간이 지나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 그것도 하나의 남김이 아닐까.
결국 ***의 묘비명과 『그리스인 조르바』가 함께 던지는 질문은 이것인 것 같다. 무엇이 진정한 자유이고,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의 증명인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도 자유고,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또 다른 자유가 아닐까. 화장 연기가 흩어지듯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사실 자신의 신념—'기록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념—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한 독자가 "간만에 다시 한번 읽으러봐야겠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 있을 터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는 건,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죽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저 작가처럼 자유를 선언할 것인가, 아니면 평범하게 조용히 사라질 것인가. 혹은 그 둘을 모두 포기하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싶은지만 생각할 것인가.
혹시 당신은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 한 문장 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압축되어 있다. 사실은 그렇게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도 된다. 화장하면 묘비가 없으니까. 하지만 혹시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면, 아무리 작은 흔적이라도, 기록 대신 감각으로 남겨보는 건 어떨까.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냘픈 윤곽으로 남는 것. 어떤 책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몰래 영향을 끼쳤다가, 시간이 흘러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 그것도 나름의 남김인 것으로 보인다.
***는 자신의 삶을 "나는 자유다"로 정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뭐라 정의할 것인가.
📌 원문 발췌
내 묘비명에는 뭐를 적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화장됥테니 묘비가 없겠군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게 서글프면서도 후련한 것 같기도 하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