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투자한다는 게 뭔지 모르면 그렇게는 못 한다.

글쓴이가 할머니 댁에서 꼬박 일 년간 수발한 후 지금도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간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라는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삼천을 건넸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주겠다는 약속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까진 할머니의 고마움이 표현된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 부양했던 손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엄마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이랑 나눠야 한다"는 주장을 자꾸 반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근거는 "둘이 오래 보고 산다"는 논리였다. 엄마의 입장도 이해하려면 그 의도를 봐야 한다. 아마도 형제간의 갈등을 피하고 싶었을 터다. 가족이 오래 화목하려면 이렇게라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나름 일리 있는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동생 쪽을 옹호하는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그 균형 개념이 흔들린다. 동생은 "직장 때문에 못 간 거지, 안 간 게 아니다"며 사정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도 이 설명을 충분히 받아줬다. 사정이 있었다면 그건 처리해야 할 정당한 이유라는 인식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상황의 핵심은 뭘까. 글쓴이는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 년을 바쳤다. 매주 시간을 냈다. 의무가 아닌 자발적 헌신이었다. 당연히 감사받을 권리가 있다. 반면 동생은 선택하지 않았다. 일이 바빴다는 이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돌봐야 할 상황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과는 다르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둘을 같이 보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입장에 따라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 "결과가 같으면 과정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둘 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주일 테니까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직접 손을 거둔 사람의 노고는 어디로 가는 걸까. 투자의 차이를 무시한 분배를 공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의견이 갈린다.

이 같은 상황은 흔한 가족 갈등인 것으로 보인다. 돌봄이 불균등하게 분담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인 것으로 보인다. 보상의 형태도 다양하다. 물질이 될 수도, 관계 개선이 될 수도, 무형의 감사가 될 수도 있다.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금전이 아니라 할머니 본인의 의사 표현이기도 하다. "이 손주가 내게 더 큰 도움을 줬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엄마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글쓴이의 노력과 헌신을 공중에 띄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결국 형제간 공정성과 가족 화목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가 이 가족의 숙제로 보인다는 관점이 나올 만하다.


📌 원문 발췌

할머니가 이번에 삼천 줬고 담에 또 준다고 했는데 엄마가 동생이랑 자꾸 나누래. 그래야 둘이 오래보고 산다고.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