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 아기가 이번 달 말 생일을 맞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생일이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출산했을 때도 내 생일은 그냥 지나갔다. 선물도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여러 번 말한 끝에 몇 달 뒤에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생일은 어떨까 기대했는데, 남편이 가져온 건 화장품 하나였다.
그것도 일반 매장에선 50만원대인 제품을 군 복지점에서 4만원에 구입한 것이었다. 처음엔 금액 차이가 서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건, 실은 그 숫자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남편이 어떻게 그 선물을 골랐는지가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남편 생일에 명품 지갑을 50만원대로 구입해줬는데, 마치 그 가격에 맞추기만 하려고 제품을 고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담긴 선택이라기보다 '계산'이 느껴졌다.
더 서운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나는 이 화장품에 대해 따로 검색해보지 않았는데, 남편이 먼저 인터넷에서 가격을 찾아봤다고 했다. 그 후 나도 피부 상태가 예민해서 후기를 확인해보다가, 군 복지점에서 훨씬 싸게 판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지적하자 남편은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웃음이 나왔다. 누가 가격을 먼저 검색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나가 아니었다.
혹시 내가 욕심이 많은 걸까 싶어서 정리해봤다. 나는 남편이 준 선물의 가격이 내가 준 것과 같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너무 속물 같은 생각이다. 나는 단지 최근에 갖고 싶었던 것들을 챙겨주거나, 아니면 백화점의 어떤 브랜드 화장품 10만원대라도 좋았을 것 같다. 진심이 담긴 선택이라면 금액이 작아도 상관없었다.
여기서 웃긴 부분이 있다. 내가 '속물이 아닐까'라고 계속 자책하는 자신이 하나도 속물처럼 안 보인다. 오히려 반대다. 금액 맞추기 같은 무성의함을 알아챈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달은 것. 이것들이 바로 상대방의 노력과 진심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모습이다.
선물 갈등은 사실 가격 싸움이 아니라는 게 이 글쓴이의 경험에서 드러난다. 그건 단순히 "얼마짜리를 받았다"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신호를 어디서 읽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특히 출산을 거치고 육아에 묻혀 자신을 챙기기 어려운 시기라면, 기념일에 선물은 단순 물건이 아니라 "너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존재 인정의 신호가 된다. 이 글쓴이가 느낀 서운함도, 결국 그 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아픔이 아닐까.
📌 원문 발췌
PX에서도 산 것도 서운한데 50만원짜리를 4만원에 산 게 정말 짜쳤어요. 그거에 가격만 맞추려고 산 느낌이랄까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