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에서 수입이 동등하다는 건 뜻하는 바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에서 한 작성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같은 시간을 일하고,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이후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고 풀어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손가락 하나 까놓을 틈이 없다. 저녁밥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를 목욕시키는 동안,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옆에선 남편이 소파에 누워 휴대폰 화면을 본다.

이것을 단순히 "게으른 남편"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맞벌이 가구가 늘어났음에도 가사 분담의 구조가 자동으로 변하지 않는 현상을 보면, 더 깊은 층위의 관성이 작동 중임을 알 수 있다. 경제적 기여와 가사 기여를 별개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암묵적인 기대——이것이 여전히 관계 속에 남아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너는 돈을 벌어오니까 그걸로 충분하고, 집안일은 내가 맡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구조 말인 것으로 보인다. 작성자가 느낀 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등한 기여가 인정받지 않는다는 절망감 같은 것이었을 테다.

"이따 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강력하다.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미루기는 상대방이 먼저 처리하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이 된다. 설거지를 하라고 요청하면 "나중에 할게"라고 대답한다. 결국 밤새 그대로 남겨진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요청하는 입장에선 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여러 번 요청했는데 계속 미루어지기만 했으니까. 그렇게 점점 더 말이 줄어들고, 말하지 않는 대신 혼자 처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이 쌓인다.

글 작성자는 십 년을 이렇게 참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십 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이따 할게"가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밤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아침이 있었을까.

결국 터지는 순간이 온다.

"니가 버는 돈이 내 돈보다 대단하냐. 그 돈 안 받을 테니까 집안일 반씩 하자."

말을 쏟아낼 때 작성자의 마음속엔 분노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절박함도 섞여 있었을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안 된다는 절절한 심정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말을 하고 난 뒤 작성자가 느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십년간 억눌러왔던 것이 한 번에 내려가는 기분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토록 무거웠던 가슴이 짐을 덜어낸 것 같다고.

이것은 역설적이지만 중요한 신호를 담고 있다. 참음 자체가 갈등을 키워온 주요 변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없다. 알지 못하니 변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작성자는 혼자만 무거워지고, 혼자만 화나고, 혼자만 외로워진다. 그것이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으로 변해왔는지는 현재의 상태가 말해준다.

이제 이 부부는 각자의 방을 쓴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지내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눈치도 보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태에서,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마음의 거리가 그 정도로 멀어진 것일까. "눈치도 안 본다"는 표현 속에서 읽히는 건 어떤 결정이나 단절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이 아닐까 싶다.


📌 원문 발췌

밥하고 애 씻기고 빨래 돌리는동안 그사람은 소파에 누워서 폰만 봐요. 설거지 좀 하라니까 이따 한다고 하고 결국 아침까지 그대로였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