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온라인 게시판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한 누리꾼이 온라인에 퍼지는 세 가지 발언을 나열하며, 이들이 공통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도, 그리고 거대한 담론 없이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발언들이었다.

첫 번째는 아이 관련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애한테 울지 마라"는 식의 말이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우는 것 자체를 문제 행동으로 보고, 감정 표현을 억제하라는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이라는 존재가 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부담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노인을 향한 발언인 것으로 보인다. "노인한테 노인냄새 난다"는 식의 표현이 그것인데, 노인의 신체적 특성을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든다. 노년기의 신체 변화를 불결함으로 표현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노인의 존재 자체가 불쾌함의 원인이 되는 구조다.

세 번째는 장애인을 향한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은 감사를 알아야 한다"는 담론이 온라인에서 자주 등장한다. 장애인이 받는 사회적 지원을 권리가 아니라 은혜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의무화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이 불편함을 지적하거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감사 부족'으로 낙인찍는다.

세 발언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모두 사회적 약자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문제 행동이자 부담으로 재프레이밍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울 수 있는 존재이고, 노인의 신체는 변화하는 것이 자연이며, 장애인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 세 표현은 모두 약자의 자연스러운 존재를 '개선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원글 작성자가 지적한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런 발언들에 특정한 이념적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패턴 자체는 동일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름이 없기 때문에 더 쉽게 퍼지고 수용될 수 있다는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혐오 표현이 '개인의 불만' 또는 '현실적인 지적'으로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 언어처럼 보이면서, 약자를 향한 구조적인 혐오 논리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달린 댓글들은 이 관찰에 동감을 드러냈다. "이름이 없으니까 거부하기 어렵다" "일상 언어처럼 통용되는 게 더 위험하다" "한두 문장으로는 반박 불가능한 구조"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약자를 향한 혐오가 이념적 담론이 아니라 '일상적 푸념'으로 유통될 때, 이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과민한 반응'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드러났다.

한 누리꾼의 게시글이 이토록 화제가 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과 일상에서 이런 패턴을 반복적으로 마주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정 집단을 직접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약자를 향한 혐오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유포되는지를 직시한 글이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