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그리운데,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건 슬픔이 아니다. 부고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두 친구의 빈자리다. 그 빈자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지인의 부고는 인생에서 흔하지 않은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직접 겪기 전까진 그것이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남을지, 참석이 단순한 예의 차원을 넘어선 문제인지를 알기 어렵다. 부고 소식을 받으면 참석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의 무게를 모른다. 얘기꾼도 전에는 지인의 부고를 받으면 하루 정도만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친구는 정말이지 좋아하는 친구였다. 부고 소식을 알렸는데 아무 답신이 없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보니 해외 체류 중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자가 안 왔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직접 전화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상한 침묵이었다. 한 달이 훨씬 넘어서 실제로 만났을 때도, 그 친구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두 번째 친구는 바로 답장을 해왔다. "바빠서 못 온다"는 문자였다. 나는 얼른 전화를 걸었다. 부조금을 절대 안 받는다고, 그냥 와서 얼굴이나 보자고. 친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거리도 가깝지 않았나. 하지만 그 친구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처음엔 이해하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누구나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길 수 있고, 해외 있던 친구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달려올 수 없었을 거라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그럴 수도 있지'가 사라지고 서운함이 또렷해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둔한 불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부고 자리에 가지 않은 선택이 오히려 더 뚜렷하게 떠오르는 역설이었다.
반면 삼일 내내 옆에 있어준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어주던 그들. 그제야 무엇이 관계의 진심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고 자리는 일상의 친절과는 다른 종류의 용기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그 옆에 있어주는 것. 말 없이 시간을 내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는 게 있다. 웃으면서 만나는 일상에선 그 친구가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인사 정도로는 관계의 깊이를 재기 어렵다. 하지만 부고 자리에서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왔는지 안 왔는지, 그것이 모든 걸 말해준다. 얼굴에 써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의 선택이.
친구의 부모님 부고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불가능한 상황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 택한 선택은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사람의 기억에, 그리고 관계의 온도를 재는 저울에.
📌 원문 발췌
당시에는 그럴수도 있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서운함이 선명해져요. 여러분 친구의 부모님 부고엔 꼭 참석하세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