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이 가득 담겨 있어 보인다. "***회사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호사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연봉 수준도 비슷하고, 사회적 위치도 대략 엇비슷한데 느껴지는 무게감이 어쩌면 다르다.

한 익명 커뮤니티 이용자가 정확히 이 차이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업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들, 특히 "변호사다", "의사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뭔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 대기업 근무도 부럽지만, 직함 자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사람들 앞에선 뭔가 달리 느껴진다는 감각이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통해 자신을 소개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건 결국 조직의 신뢰성에 자신을 의탁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 다닌다"는 표현은 그 기업이 주는 명성, 그 기업이 인정한 직원이라는 신분에 자신의 가치를 얹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튼튼할수록, 브랜드 파워가 강할수록 그 직원도 자동으로 띄어나 보인다. 하지만 조직은 영원하지 않다. 구조조정을 겪고, 경영 위기에 처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든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 회사에서의 직책과 경력은 빠르게 무게를 잃기 시작한다.

변호사, 의사, 약사라는 타이틀은 이와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순전히 그 개인의 능력과 국가가 인정한 자격에만 기반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로펌에 있든, 어느 병원에서 일하든, 어느 약국의 약사든 그 직함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소속 기관이 문을 닫아도, 그 사람이 그곳을 떠나도 그 자격은 평생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해도 여전히 의사고, 대형 법률사무소를 나와 소외 지역 상담소에서 일해도 변호사의 직함은 그대로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보편성, 이런 절대성이 바로 사(士)나 의(醫) 같은 글자가 붙은 직업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로 보인다.

글쓴이가 지인의 변호사 친구를 보면서 느꼈다는 "너무너무너무 멋짐"은 아마도 이런 차원의 감정일 것 같다. 대기업 직원도 분명 부럽다는 반응이 있고, 높은 연봉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자신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회사라는 후광 없이도 세상에 설명 가능한 직업. 그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어렴풋이 감지하는 것 같다.

퇴직한 후를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저 ***에서 다니다가 그만뒀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저는 변호사예요"라고 말하는 것. 과거형과 현재형의 차이. 상실된 정체성과 영구적 정체성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두 문장 사이의 간격이야말로 회사명에 기대는 직업인과 직함 자체가 정체성인 직업인 사이의 근본적인 거리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 아마 바로 그 깨달음이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다른 직업 선택지가 있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정체성의 문제가 얼마나 깊은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직업이 변호사다. 의사예요~ 말하는 직업 너무 부러움. 지인이 변호사인데 너무너무너무 멋짐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