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수줍다'는 단순한 성격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어로 자신의 심리 상태나 성격을 설명할 때, 이 단어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원어민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프랑스인이 한국어를 공부하며 느낀 것은 이와 사뭇 달랐다고 한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글에 따르면, 그 사람이 모국어인 프랑스어에서는 성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하려 해도 '이 단어도 아니고, 저 단어도 아니고...'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그 글의 골자다. 수줍다, 부끄럽다, 머쓱하다, 쑥스럽다—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 표현들은 실제로는 미묘하게 다른 맥락과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수줍음은 더 성격적이고 지속적인 특성이고, 부끄러움은 특정 순간의 감정, 머쓱함은 어색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쑥스러움은 또 다른 층의 감정인 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세분화된 표현들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가 많다'는 뜻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어휘 세분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어떤 문화권이 특정 개념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그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더 세밀하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화권에서 '수줍음'과 '부끄러움' 같은 미묘한 감정들이 중요하게 인식되었기에, 그를 표현하는 어휘도 풍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인이 한국어를 통해 깨달은 것도 이 점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성격과 감정을 기존의 단 하나나 두 개의 단어로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색팔레트에 색이 하나 또는 두 개만 있을 때와 수십 개가 있을 때의 차이처럼, 표현의 선택지가 확대되면서 자기표현의 정확도도 올라갔다고 느낀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그 프랑스인의 말에서 "한국어는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틀에 가둔다는 것이 제한된 표현만을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한국어의 풍부한 어휘는 오히려 다양한 자아상을 수용하고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해석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한 개인의 경험담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글의 말미 주석도 주목할 만하다. 언어학적으로 이를 보편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국어 화자가 당연하게 쓰는 표현의 풍부함을 외국인이 발견하고 놀라워한다는 자체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한국어가, 사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생각보다 섬세하고 자유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 원문 발췌

프랑스어는 성격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지만, 뭔가 조금 부족했었다네요. 그런데, 우리말은 수줍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표현이 많아 자신의 성격을 더 잘 표현하게 되었다는군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