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던 중이었다. 내년 초라는 확실한 시점이 있었고, 그동안 부모님 뵈러 다니고, 혼수 준비하고, 예식장을 돌아보는 등 실질적인 계획들을 하나씩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일정이 갑자기 중단될 수도 있다는 걸. 신랑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엔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상태가 점점 나빠졌고, 결국 의사로부터 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순간을 설명할 말이 없다. 너무 갑자기였고, 너무 현실이었다.
의사의 진단은 겉으로는 희망적이었다.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들렸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동시에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말하지 않은 불확실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가능하다는 확신보다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리 잡았다. 그날부터 하루하루를 불안감과 함께 버티게 됐다.
그러다 보니 파혼을 생각하게 됐다.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것 자체가 떠올랐다. 신랑한테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이 있었다.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은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이었다.
친구들한테 이 고민을 터놨을 때 돌아온 말은 "너 너무 이기적인 것으로 보인다"였다. 그 평가가 자꾸만 맴돌았다. 나는 이렇게까지 한심한 사람인가. 상대방의 힘든 상황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먼저 챙기는 사람인가.
내가 결혼에 대해 품었던 기대는 소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힘들 때 서로를 의지하고, 기댈 수 있으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나누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현실 앞에서는 달랐다. 예상 밖으로 커진 미래의 불안감이 나를 흔들었다.
내 모든 생활을 내려놓고 병간호에만 매달려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파혼이라는 선택지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흔들리고 선택을 재검토하려는 것이 정말 이기심일까? 이 질문은 자신을 자책하는 틀로만 작동해서는 안 된다.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의 건강 상태가 급변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전제 자체를 다시 묻게 하는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힘들 때 함께"라는 결혼관을 가진 사람도, 그 힘듦의 규모가 예상을 넘어설 때는 선택을 재검토하게 된다. 그것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는 본능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한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는 현재 이 고민 속에서 매일을 버티고 있다고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품은 채로.
📌 원문 발췌
파혼까지도 고민하고 있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가 싶기도 해요. 저는 결혼이란 게,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 함께 걸어가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