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친구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과 함께 저녁 먹을 텐데, 나도 함께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처음엔 백화점 근처의 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곳이라면 분위기도 좋고,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나섰다. 자신이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는 곳을 안다고 했다. 결국 친구 남편의 추천을 받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게 됐다.

주차는 정말 힘들었다. 거리가 좁아서 자리를 찾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나마 식당에 도착했더니 이미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줄을 선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이미 퇴근 직후라 지쳐있던 상태였다. 처음 백화점 계획으로 돌아가지 않은 그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에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친구까지 데려온 상황이니, 상황을 주도한 사람의 센스가 아쉬웠다.

그런데 친구는 달랐다. 줄을 보고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 망했네~" 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내 얼굴은 점점 경직되고 있었는데, 친구는 여전히 명랑했다. 오히려 남편이 미안해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 가도 괜찮다", "진짜 죄송하다" 이러며 계속 중얼거렸다. 남편의 불안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미 지쳐버렸으니 그냥 여기서 먹자고 했다. 더 이상 움직일 에너지가 없었다.

음식이 나왔을 때,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웨이터의 서빙이 좀 아쉬웠다. 자잘한 불편이 쌓였다. 내 얼굴은 자연스럽게 경직되어 있었고, 마음 어딘가는 불만으로 가득 찼다.

친구가 느꼈는지 장난스러운 톤으로 말했다. "당신 때문에 오늘 망했어! 책임져!" 진지하지 않은 농담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더 짜증이 났다. 친구는 남편을 거의 혼내지 않으면서 나한테는 이렇게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남편이 먼저 계산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 제 센스 없음으로 정말 죄송합니다.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모십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고, 그것을 수습하려고 움직인 거였다. 그리고 다시 웃음으로 돌아섰다. 분위기를 무겁게 끌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였다.

친구는 남편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 여왕님들 모시고 다시 해봐라~"라고 웃으며 장난을 계속했다. 상황을 받아주되, 그것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헤어질 때 나는 남편에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친구는 남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당신, 오늘 눈치 보느라 정말 수고했어"라고 했다. 둘이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완벽한 저녁은 없었다. 실수도 있었고, 불편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식이 달랐다. 친구 부부는 "완벽한 상황"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실수를 빠르게 인정했고, 분위기를 무겁게 끌지 않으려 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먼저 말했다. 친구는 남편을 완벽한 사람으로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노력을 받아주고 웃음으로 채웠다.

평소 나라면 이 상황에서 훨씬 더 짜증을 냈을 것이다. 더 엄한 말로, 더 많은 탓으로 상대를 꾸짖었을 것 같다. 상대가 원점이 될 때까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런 예민함이 상대로 하여금 더 조심스럽게 만들고, 사과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내 남친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단순히 "성격이 고집세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이는 예민한 반응 때문에, 상대가 먼저 마음을 닫아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깨달음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사람들을 보면, 특별히 완벽하거나 센스가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신, 실수 후의 태도가 달랐다.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함 없이도 받아주는 능력, 그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둥글고 곰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사과할 때 그것을 충분히 받아주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 원문 발췌

자기 잘못 바로 인정하는 것도 인상 깊었고, 짜증 나도 사람 갈구지 않고 적당히 웃어가며 넘기고, 서로 위해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하는 게 기본이구나.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