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정치 논쟁이 벌어졌다. 글쓴이가 던진 질문은 깊이 있었다. 논의가 아닌 배제, 의견이 아닌 폭력이 벌어지고 있지 않냐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법·제도 개편을 주제로 한 토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터져 나온 것은 이견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극단적 비난들이었다. "다른 입장을 유지하면 내란 가담 세력", "이를 옹호하는 것은 검찰 쿠데타를 옹호하는 것" — 이런 식의 주장들이 쏟아졌다. 마치 그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것 자체가 도덕적 결함이자 범죄인 양.
처음엔 토론이 있을 줄 알았다. 정책의 대안에 대해, 보완점에 대해 실질적인 의견 교환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비판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맹목적 반대를 하는 게 아니었다. "대안이 필요하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요점이었다. 문제 제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달라졌다. 관점이 다른 이들, 우려의 초점이 다른 이들,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극단주의자, 내란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 글쓴이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소설 속 인물을 인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극렬한 슬로건으로 국민을 선동하지 않았다. 구호와 애국 외침보다는 합리성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때문에 같은 진영 내에서도 의심받고, 결국 테러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극단주의자들에게 제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유가 중요한 이유는 현실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확히 겹쳐지기 때문이었다.
강경론자들이 내놓는 대안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자 반대 의견을 내던 사람들이 더욱 강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악의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시위에 나갔던 사람들, 공동의 분노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적'으로 낙인찍히는 게 이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도 검찰의 부당함에 분노했던, 여러 해 동안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경론자들은 이들을 단순히 반대파로 보지 않았다. 작전 세력이라 불렀고, 내란 가담자라 규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토론 공간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견 불일치를 범죄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놓쳤던 게 있다. 파시즘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파시즘은 외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는 것. 정의로운 목표를 앞세우되,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억압할 때 싹튼다. 슬로건과 구호로 대중을 추동하되,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을 때 형성된다. 그것이 강경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때 가장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엔 분노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함께 행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불의를 마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 표현 자체가 범죄 취급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토론 공간이 닫혔다. 이견 제시자는 도덕적 결함을 가진 자로, 또는 적으로 취급받았다. 정치적 진영의 경계가 점점 더 높아졌다.
글쓴이의 깨달음은 자성이었다. 파시즘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다. 정의로운 분노 속에, 강경함이라는 이름 아래에, 동조 압력이라는 형태로 숨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극단주의자를 경계하는 것. 자신의 진영 내에서도 폭력성을 살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깨달음이었다.
📌 원문 발췌
의견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의견의 탈을 쓴 폭력이지요. 파시즘은 우리 안에 있었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