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난임센터 주차장. 둘째 아이를 위해 진료받던 30대 여성 A씨가 진료를 마친 후 자신의 차에 접근했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량 곳곳이 날카로운 물체로 인한 긁힘과 손상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신고하고 주차장의 CCTV 영상을 검토한 결과, 이 피해는 같은 센터의 다른 환자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첫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센터에 함께 데려갔는데 그 점이 다른 환자의 분노를 촉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난임 치료는 신체적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르몬 주사 요법이 병행되면서 감정의 변동성이 커지고, 매번의 실패가 심리적 상처로 누적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같은 공간 내의 자극—특히 누군가의 아이나 임신 성공의 표현—이 깊은 상처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 의료 현장과 커뮤니티 내에서 오래도록 언급되어 왔다. 결국 한정된 대기실이라는 공간에서 이해관계가 심하게 얽혀 있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난임 환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룰'이 있다. 자녀를 동반하지 않기, 대기실에서 임신 소식을 큰 목소리로 나누지 않기, 초음파 사진을 밖에 꺼내 보지 않기, 임산부 배지를 미리 떼기 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기본적인 매너 혹은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 대한 배려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병원 내에서 데려온 아이가 시끄럽게 행동해도 부모가 제어하지 않는 경우, 접수 데스크에까지 민원이 접수되는 일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국내에서 연간 난임 진단을 받는 환자가 3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런 갈등이 점차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논리는 명확하다. 난임 치료를 겪은 후 출산에 성공한 40대 B씨는 "수년간 시험관 시술을 반복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는 느낌"이라며 "유산 소식을 듣거나 치료 실패로 절망했던 직후에 남의 임신 성공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마음이 더 깊은 좌절로 빠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호르몬 작용으로 이미 감정 조절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런 자극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상호 배려는 필수라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눈물을 흘리는 환자 옆에서 자신의 성공을 떠벌리는 것이 과연 배려하는 태도인가 하는 질문이 밑바탕에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관점도 존재한다. 결혼 후 임신을 준비 중인 33세 C씨는 "배려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의무는 아니다"라며 "난임으로 고생했던 사람이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을 때, 그 기쁨을 표현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또 다른 환자인 38세 D씨는 "다른 사람의 임신 성공 소식을 들으면 이 병원의 의료 실력을 신뢰하게 된다"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난임 환자라는 신분 자체가 다른 이들의 표현을 제약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규칙이 공식적인 병원 정책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난임센터에서는 아동 동반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공식적 압력 형태로 퍼져 있다. 이것이 난임 커뮤니티 내 에티켓 논쟁의 핵심 문제다. 출처가 불명확한 규범이 '상식'으로 굳어지면서,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암묵적 낙인이 찍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일방적인 배려를 '기본'으로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을 추구하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 사건까지 일어나는 지금, 이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단순한 도덕적 호소보다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 원문 발췌

자신의 차량 곳곳이 날카로운 물체로 긁혀 있었다. ***씨가 첫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함께 데려간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호르몬 주사로 감정 기복이 크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인 만큼 같은 처지의 환자들이 이를 암묵적 룰로 지켜 달라는 취지다.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