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튜브 채널을 꾸준히 시청해온 한 누군가가 최근 느낀 변화를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채널을 여전히 자주 켜지만, 예전처럼 집중하며 보지 못한다는 표현이었다. 흥미롭게도 시청자는 그 이유를 진행자의 능력이나 콘텐츠 질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내가 이 채널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고 정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걸음 물러선 자기 인식이었다.
정치 방송의 특성상, 진행자는 종종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업적과 우수성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마치 그들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설득하려는 듯한 톤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도 이런 구조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편함의 근원은 다른 데 있었다고 밝혔다. 바로 그 진행자의 확신에 자신이 더 이상 동조하지 못한다는 자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함께 나누던 감정과 해석이 언제부턴가 거리감을 만들고 있었다. 그 간극을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은근한 피로를 안겨준다는 반응이었다.
시청자의 심리 변화가 급격해진 계기로 지목된 것은 "통수"라고 표현한 어떤 경험이었다. 구체적인 사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이후로 정치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이상 어떤 정치인도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지 않겠다"는 다짐이 생겼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자리에 새로운 판단 원칙이 들어섰다. "건별로 사건을 판단하자. 잘하는 건 칭찬하고, 못하는 건 비판하자." 이것은 팬덤의 감정이 아니라, 상품을 평가하는 소비자의 냉정함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 태도의 변화가 단 한 명의 정치인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예전에 지지했던 다른 정치인까지도 동일한 기준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 "정치인은 도구다"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인이란 자신의 도구로서의 생명력을 다할 때까지만 의미가 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단순한 냉소라기보다, 반복된 기대와 실망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된 일종의 심리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다. 열정이 식어가는 과정의 한 끝점이었던 것으로 읽혔다.
이런 심리 상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한쪽 관점에서는 이를 현실 감각이 있는 성숙함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가능하다. 정치인을 신격화하지 않고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한다는 것이 혹은 이상적인 민주시민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제기될 수 있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정치를 철저히 도구적이고 거래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 안에 남는 것이 정말 무엇일까. 글쓴이의 토로 속에는 이 둘 사이의 긴장이 켜켜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였다.
📌 원문 발췌
통수를 쎄게 맞으니까 그냥 건마다 판단을 하자 잘하는건 칭찬하고 못하는건 욕하고... 정치인들은 도구로서의 생명력이 다하면 거기서 끝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