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두 영역이 있다는 이 관찰은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 있다. 하나는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정치'고, 다른 하나는 집권 후 국민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비전의 정치'다.

***의 정치적 궤적은 후자로의 전환에 실패했다는 게 이 지적의 요점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치적 전성기를 돌아보면, ***과 검찰이라는 '명확한 적'이 있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저항의 언어는 정말 강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깃이 명확했고, 지지층의 분노도 극대화됐다. 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기득권과 독재적 권력에 맞서는 정의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 시기의 저항은 살이 있고 뼈가 있는 정치였다.

하지만 국면이 바뀌었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그간 '거대악'이라 불렀던 세력이 약해지자, ***와 그 진영의 정치 행보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저항의 문법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다.

*** 보궐선거가 상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서는 이 선거를 ***가 '저항의 정치만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기회였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네거티브만 되풀이됐다고 평가한다. '상대는 악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결과는 역이었다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무당층이 염증을 느끼고 이반했다는 평가다. 저항 정치가 할 일을 다했다면, 이제 다른 비전을 보여달라는 신호처럼 민심이 읽혔다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씨, ***씨 같은 운동권 배경 인물들, 그리고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 목소리들도 여전히 과거의 저항 문법에 발이 묶여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 정부가 더 강경하지 않은가', '왜 검찰개혁을 더 밀어붙이지 않는가' 같은 질문이 계속된다. 이는 운동권 문화의 특성을 드러낸다.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계속 저항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있다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여당 시대의 저항 정치는 근본적 한계에 맞닥뜨린다. 야당 시절의 저항은 명확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 집권층이 있고, 그에 맞서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런데 그 집권층이 바뀐 뒤에도 같은 방식을 고수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당에게는 '책임'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다. 야당은 과거와 적을 상대로 말할 수 있지만, 여당은 미래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계속 과거만 보고 있으면, 국민은 이를 '책임 회피'로 읽는다. 이것이 *** 보궐선거의 결과를 설명하는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더 깊이 들어가면, '적이 사라진 저항 정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역설에 처한다. 어제의 저항이 오늘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전 없는 저항은 결국 관성이 되고, 그것을 보는 국민의 눈도 식어간다.

이 온라인 글의 마지막 질문이 날카롭다. '***의 정치적 비전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검찰개혁이라면, 그 과제가 완수되거나 불가능해지는 순간 그의 정치적 역할도 함께 소멸하지 않겠는가. 저항 정치는 구체적 목표와 결합할 때 의미를 갖는다. 그 목표가 달성되거나 현실 앞에서 희석되는 순간, 저항만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저항은 단순히 관성이 될 위험이 크다. 새로운 국면에 맞는 새로운 비전이 없다면, 과거의 영광은 오히려 정치적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거대악 ***과 검찰에 대한 저항의 정치는 필요했지만 이제 거의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는 '저항의 정치'만 보여줍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