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함께했지만, 결국 우리는 다른 기로에 섰다.

나는 30대 중반에 아이 둘을 낳았고, 지금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육아와 가사로 하루를 채운다. 친구는 30대가 되기 직전,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며 고향을 떠났다. 그때 내가 커피쿠폰도 보내고 응원했던 그 친구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우리를 얼마나 멀리 떨어뜨렸는지, 우리는 생일 선물 메시지 정도로만 인사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달라 있었다. 자격증을 따고, 1년을 일했고, 이제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좋은 소식을 기대했다. 결혼 소식이 있을 줄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친구는 아직 없다고.

그 순간 뭔가 부서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부하는 동안이야 바쁠 수 있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은? 물었다. 인연이 없었다고 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처음엔 놀라움을 숨기려 했지만, 차마 물었다. '그럼 남자친구는 없어도 괜찮다는 건가?'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 결혼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 속 무언가가 꼬였다.

공부를 하겠다며 그토록 단호했던 친구의 추진력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금 와선 "언젠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지만, 결혼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달랐다. 결혼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소개팅을 3건이나 했다. 움직였다. 노력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가족이 아닌가.

30대라는 게 갑자기 무거워졌다. 친구는 이미 늦었다. 더 늦으면 더 힘들 텐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땐 다음과 같은 조언이 자연스러웠다.

"결혼 생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따끔하지만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조언이라고 확신했다. 친구도 처음엔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갈 때쯤, 친구로부터 장문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 밥을 차려주려던 나는 놀라서 눈물이 날 뻔했다. "자신은 열심히 살고 있으며, 그를 존중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전화했다. 하지만 친구는 받지 않았다. 또 전화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마지막 전화는 친구가 직접 끊어버렸다.

그 이후로 침묵만 있다. 내 입장은 여전히 명확하다. 친구가 비혼을 택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결혼을 원한다고 했으므로, 30대의 현실 속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적극적"이 정말 필요한 건지, 친구의 속도가 내가 판단해야 하는 건지,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었는지가 모두 의문이 된다.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을 때의 내 놀라움, "언젠가"라는 말에 느낀 답답함,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는 조언. 사실은 친구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게 맞을까. 아니면 내가 택한 길―결혼, 육아, '순리'라는 이름의 인생―이 옳다는 것을 친구도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30대 여성의 결혼과 커리어. 이건 누가 정하는 '늦음'이고, 누가 정하는 '올바른 순서'인가. 친구의 침묵 속에서, 나는 그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 원문 발췌

결혼생각이 있으면 행동을 하라고 하면서 행동을 안하면 바뀌는게 없다고 따끔하게 한소리 했어요. 자기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존중을 해달라는데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