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라는 감정을 얼굴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정이 차올라오는 것을 멈플 수 없다. 한 대학 동기가 토로한 심정인 것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는 추잡하다고 느껴지지만, 감정 자체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기는 대학 시절 자신의 외모에 별로 자신이 없던 학생이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얼마 전 소개팅을 통해 법조인 남성을 만났고, 불과 2개월 만에 임신이 되었다. 결혼을 앞둔 상황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의 전개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이 소식은 글쓴이에게 예상과는 다른 감정을 안겨주었다. 만약 대학 시절 잘나가던 누군가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질투했을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법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박탈감은 그 정도가 다르다. 왜냐하면 글쓴이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약속한 신념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이런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외모가 뛰어날 필요도 없고, 집안이 좋을 필요도 없다. 대신 나 자신이 개인으로서 충분히 뛰어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신념이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모든 것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가치관 말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그 신념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으로 보인다. 평소엔 그 신념이 하나의 안전망처럼 작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동기의 사례를 목격한 순간, 그 신념은 무너지는 듯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가 생각한 '성공의 조건'에 못 미치는 사람이 '팔자'라는 운에 의존한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모든 것을 뒤바꿔버린 것 같았다. 오히려 더 강한 박탈감이 밀려왔다. 마치 예외가 나타나는 순간, 그동안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쓴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못난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들이 과연 의미 있을까'라는 더 깊은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행운과 자신의 노력이 정말 다른 선상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자신이 붙들어온 신념과 그 신념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인생의 변수는 자신의 노력 너머에도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오히려 더 강한 두려움을 낳는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여러 결이 섞여 있다. 글쓴이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남의 행운을 시기하는 마음은 담아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동시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감정 아닌가'라며 위로를 건네는 댓글들도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가는 게 맞다'는 격려의 목소리도 보인다.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되, 타인의 행운을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라는 반응들인 것으로 보인다. 때론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도 성장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조언도 있다.


📌 원문 발췌

과에서 손꼽히게 못생긴 애였는데 소개팅으로 ***출신 검사 만나더니 만난지 2개월만에 덜컥 애생겨서 다음주에 결혼한다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