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의 글쓴이는 지금 혼란 상태다. 결혼 전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결국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우고 있다는 게 아니다. 그것도 아이가 4살이 되고, 남편 본인이 금연 보조기까지 구매한 후에도.
일 것 같은 날이었다. 가족이 모두 장염을 앓고 있는 중,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올 겸 편의점에 간다고 한다. 아내는 그 와중에 이온음료를 사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남편이 한 말은 "자기 담배도 사올 겸 나가겠다"는 것.
그 순간 아내의 머리에 떠오른 건 며칠 전 남편이 자신의 돈으로 구매한 금연 보조기였다. 배우자가 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행동 아닌가. 그래서 아내는 물었다. "금연 보조기 산 걸 어쨌든 다시 담배를 사러 가냐?"
표현이 예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실제 의미는 간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신이 스스로 끊겠다고 표현한 그 의지가 어디 간 건가"였다.
남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인상을 쓰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역으로 아내를 탓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자존심이 상한다"는 투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인다. 아내가 다시 역으로 물었다. "정말로, 말한 사람이 잘못인가, 피는 사람이 잘못인가?"
그 다음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원래의 문제(금연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직접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의 "말투"와 "기분"으로 초점을 옮겼다. "기분이 안 좋다. 아파도 그런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는 것.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전형적인 "논점 회피"다. 남편의 말—"아프다고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래 문제를 덮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건, 금연 보조기를 구매한 건 남편 자신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나는 담배를 끊겠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가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을 상기시키는 건 공격이 아니라 확인인 것으로 보인다. 마치 약속했던 날짜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던 사람이 "어디 간 건가"라고 묻는 것처럼.
그런데 남편의 논리는 다르게 작동한다. 원래 문제는 무시한 채, "네가 상처를 줬다" → "그래서 너의 태도가 문제다" → "따라서 넌 상냥하게 말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이렇게 되면 "그럼 내 담배 문제는 언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내가 느끼는 혼란도 여기서 나온다. 아내는 자신에게 말을 돌이켜본다. "혹시 내가 상냥하게 말하지 못했나? 혹시 내가 잘못한 건가?" 자책의 늪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4년을 생각해 보자. 결혼 전부터 4년간 "끊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 4년 동안 아내도 기다렸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아이가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며. 금연 보조기를 구매하는 남편의 모습도 봤을 것이고, 이번엔 진짜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이 "태도 불량"으로 돌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
상냥함이 진짜 문제인가. 상냥하게 말했다고 해서 약속이 지켜지거나, 상대가 자신의 책임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반대일 수도 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상대의 "말투"를 문제 삼는 화법이 얼마나 강력한 방어 메커니즘인지 생각해 보면, 아내가 느끼는 혼란—"내가 뭘 잘못했나"—바로 그것이 이 화법의 결과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원점의 약속은 흐려지고, 상대는 자신이 뭔가 못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묻고 싶다. 정말로, 말한 사람이 잘못인가, 피는 사람이 잘못인가?
📌 원문 발췌
결혼 전부터 끊는다고 하더니 결국 애 낳고 네살 될때 까지도 저러는데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