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지다"라는 표현을 아직도 자주 본다. 누군가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대량의 뭔가가 순간적으로 쏟아질 때 이 말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봇물 자체 — 관개지에 물을 대기 위한 댐이나 저수지가 터지면서 흙탕물이 무섭게 흘러내리는 장면 — 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에겐 텔레비전이나 뉴스 속 풍경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비유라는 표현의 기초는 화자와 청자가 같은 심상을 나눌 때 처음으로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봇물처럼"이라는 말이 제 역할을 하려면, 듣는 사람이 그 장면을 직접 경험했거나 최소한 충분히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도시에서만 자란 세대, 특히 어린 세대에게 이 표현이 어떻게 들리는가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장면이 선명하지 않으면, 비유는 그저 "뭔가 크고 흙탕하고 무섭게 흘러내리는 물" 정도의 약한 인상만 남길 수 있다. 진짜 목표인 '갑작스럽고 걷잡을 수 없는 강한 흐름'이라는 감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표현을 쓰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일종의 관성으로만 움직인다. "이건 뭔가 좋지 않은 뜻의 표현이겠구나" 하는 정도로 그친다는 반응이 나온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문제는 표현 자체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바뀌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농촌 인구는 도시로 집중되었다. 경작지를 보며 자라지 않고, 관개 시설을 일상에서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다수파가 되었다. 새로운 세대와 기존 표현 사이에 맺어진 느슨한 고리 — 그것이 "봇물 터지다"의 현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이건 관용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관용어의 자연스러운 수명 문제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표현은 그걸 만든 세대의 경험에 뿌리를 내린다. 그 세대가 사라지거나 기억이 희미해지면, 표현도 함께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봇물"은 분명 예전에는 명확한 비유였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 또는 적어도 관개의 중요성을 알던 사람들에겐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청자는 줄어들었다. 같은 표현을 써도 전달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낡은 표현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비유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말하려는 이 장면을, 내 청자가 정말 떠올릴 수 있을까?" 좋은 비유는 반드시 새롭거나 화려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청중이 바로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력의 문제가 아니라 청자와의 경험 공유도가 관건이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바뀌면 비유도 바뀐다. 그걸 인식하면서 말을 고르는 것 — 그게 진정한 언어 감수성이 아닐까.


📌 원문 발췌

비유라는 건 했을 때 뭔가 와닿는게 있어야 하는데, 안 좋은 쪽으로만 연상되는건 제기능을 못한다는 거잖아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