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의 누리꾼이 던진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친했던 동기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 소식을 받았다는 것. 처음에는 같은 학교에서 제법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지만, 졸업 후 살아가는 지역이 달라지면서 6년 동안 직접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 친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한 가지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매해 명절과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먼저 연락을 해왔고, 생일 선물까지 챙겨줬던 것은 친구 쪽이었다.
이 대목이 문제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6년이라는 시간은 얼핏 길어 보인다. 만난 적도 거의 없으니 그저 이름만 남은 관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거리가 멀고 비대면이었던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사연자의 친구가 실제로 해왔던 일들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매년 먼저 손을 내린 건 친구였다. 명절이 돌아올 때 챙겨주고, 생일이 되면 선물까지 건네준 것도 친구였다. 이는 거리 때문에 직접 만날 수 없었어도, 그 친구가 끊임없이 상대방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어느 한쪽이 계속해서 성의를 기울여온 것을 보면, 관계의 의미는 만남의 빈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 된다.
장례식은 단순히 의례적 자리만은 아니라는 관점이 있다. 오히려 지나간 관계를 돌아보고, 그 사람이 남긴 온기를 마지막으로 느끼는 자리다. 특히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관계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차를 써야 한다는 부담, 장거리 이동의 수고도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순간에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그 친구가 6년 동안 어떻게 자신을 대했느냐는 점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부담과 의무로만 판단하기보다는, 관계의 온도를 먼저 느껴보는 것이 선택의 순서에 맞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연차 사용도 회사 상황에 따라 부담스러울 수 있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드는 물리적·심리적 에너지도 결코 작지 않다. 경제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는 의견들이 있다. 만약 지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은 없을까? 그 친구를 떠나보내지 못한 채 마음에 남은 미안함이 계속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 질문이 결국 판단의 진짜 기준이 된다는 평가가 다수를 차지한다.
감정적 채무감으로 억지로 가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점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보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느냐가 관계의 진정성을 결정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6년을 만나지 않았어도 매해 챙겨준 친구라면, 그것이 바로 관계의 무게를 재는 척도가 된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 참석 여부의 결정은 결국 자신의 양심과 후회 가능성에 맡기되,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평가가 많다.
📌 원문 발췌
6년 동안 만나지 않고 연락만 했지만, 매년 명절과 생일에 연락해주고 생일 선물도 챙겨주었다.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