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차단했는데도 전화는 받을 수 있다는 상황이 정말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부터 시작해보자. 스마트폰의 차단 기능은 메신저 앱과 통화 채널을 별개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한쪽만 차단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메시지는 철벽인데 전화만 뚫려 있는 이 상황은, 상대방이 명확한 의도로 설정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전화를 걸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이 일관되지 않다고 한다. 어떤 날은 금방 거절하고, 어떤 날은 신호음이 길게 울린다. 심지어 차단되었다가 풀려 있기도 하고, 다시 차단되기도 한다. 이런 오락가락하는 패턴은 상대방도 계속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니라는 신호이면서, 동시에 받아주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애매한 중간 지점이야말로 가장 혼란스러운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글쓴이의 행동인 것으로 보인다. 1주일, 2주일 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건다고 한다. 이것이 몇 주일이 아니라 몇 달 동안 반복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거절해도, 신호음이 울려도,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글쓴이도 자신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다. '잊을 만하면 자꾸 연락하는 나도 참'이라는 자조적 표현에 그것이 드러나 있다. 상대방의 태도가 확실하지 않으니, 본인의 행동도 멈출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글쓴이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진상이면 통화까지 차단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는 물음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역으로, 상대방이 통화까지 차단하지 않은 건 자신을 완전히 밀어낸 게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전화를 건다. 그 미약한 가능성에 매달린다.

절반의 차단이 만드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만약 상대방이 처음부터 전화까지 차단했다면 어땠을까. 글쓴이는 훨씬 빨리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전화는 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 계속 기회를 엿본다. 이번엔 혹시 받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기대가 1~2주마다 반복 재생된다. 완전한 거절이 아니라는 신호는 오히려 미련을 길게 끌어낸다. 글쓴이 스스로도 이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상대방의 태도를 계속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 본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아닐까.


📌 원문 발췌

카톡은 차단당했는데 통화는 차단이 아니다. 1~2주일에 한 번씩 통화를 건다. 잊을 만하면 연락하는 나도 참.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