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표 제도가 태어난 배경은 명확해 보인다. 정치권이 청년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청년공천, 청년재단, 청년위원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청년들을 대표할 인물'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였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제도가 청년들의 기대감을 높였을 수도 있다. 자신들의 세대가 정치 무대에 직접 목소리를 낼 기회라는 희망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능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청년을 벼락 출세시켜 주면 청년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누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걸까? 이 가정 자체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낸다고 지적된다. 정치권이 청년을 정말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청년'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필요했던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더 깊은 문제는 선발된 청년이 빠르게 청년과 멀어진다는 구조에 있다. 공천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 이상 평범한 청년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급작스러운 권력과 지위, 미디어의 관심,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안정성—이 모든 것이 쌓이면 처음 느꼈던 '청년으로서의 고민'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완성된다. 취업난, 주거비 부담,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는 평범한 청년의 삶은 그들의 과거가 될 수 있어도 현재가 될 순 없다. 이것이 선발 직후부터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정치권은 여전히 그 사람을 '청년대표'로 소개한다. 벼락 출세한 그 사람이 평범한 청년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거나 실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는 한번 생각해보면 선명해진다. 대표 선발 직후부터 대표되는 집단과 삶의 조건이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이 정치권의 청년 특별 트랙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보인다.
제도 설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공천 방식이 최선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청년'이라는 라벨이 주는 정치적 이미지 활용이 더 우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벼락 출세한 청년 대표가 보통 청년의 고민을 실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 자질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고, 선발과 동시에 벌어지는 '선발 구조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결국 이 역설은 간단하지 않은 질문으로 남는다. 청년을 정말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권력과 지위를 얻은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대표되는 집단에 속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표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 익명 게시판의 글쓴이가 제기한 이 질문에 많은 청년들이 공감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고 전해진다.
📌 원문 발췌
이미 너무 벼락 출세하여 더이상 평범한 청년 혹은 평범한 사람의 평균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된 그 사람이 보통의 청년을 이해해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거나 그들을 위해 일한다는 그런 생각은 왜 하는 걸까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