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정치는 명확한 사이클을 따른다. 처음엔 우상화로 시작한다. 어떤 정치인에게 기대를 품고, 그 사람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거라고 믿으며 매달린다. 그러다 그 정치인이 조금만 삐끗하거나 기대와 다른 결정을 내리면, 어제의 우상은 오늘의 악마가 된다. 지지자들은 배신감에 몸을 불사르며 악마화에 돌입한다. 이 반복은 개별적 실수 때문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

지지자들이 "내부 총질"이라는 표현을 꺼내 드는 순간이 있다. 내부에서 나오는 건강한 비판, 심지어 건설적인 의견마저 종으로 부른다. 왜일까? 그 정치인이 단순히 지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실패가 곧 자신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 대한 비판처럼 들린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판을 수용할 수 없다. 비판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정당성 전체가 흔들린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 진영 내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지배한다. 중간 지점은 없다.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으로 분류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책도 흑백으로 나뉜다. 결과적으로 진영 전체는 자정 능력을 잃는다. 내부에서 문제를 지적할 수 없으니, 외부의 비판에만 반사적으로 반발한다. 이렇게 진영이 고착되면, 실제 변화나 개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진영 간의 분열과 대립만 심화될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SNS 시대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정치의 부족화(tribalism)'라 불리는 현상이 확산됐다. 정치가 이성적 판단과 증거의 영역을 벗어나 정서적 동일시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논리는 소용없어진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개인 정체성의 핵심으로 여기게 되면서, 정치는 더 이상 합리적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되었다.

또한 평범한 정치인들을 초인적인 도덕성과 판단력을 갖춘 영웅으로 기대하는 문화도 근본 원인이다. 개인으로서의 결함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성인 같은 완벽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려 하니, 실망과 배신감만 반복된다. 그 기대가 한번 깨지면, 반동은 극단적이 된다.

대안은 간단하다. 정치인 개인을 우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추앙보다는 정책과 행적이라는 객관적 결과물로만 평가한다. 비판을 '내부 총질'이 아니라 진영을 건강하게 만드는 자정의 목소리로 받아들인다. 감정과 정체성을 분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는 자신의 신념 증명이 아닌 사회 운영의 구체적 방식에 대한 이성적 논의로 돌아올 수 있다.


📌 원문 발췌

그냥 평범한 정치인일 뿐인데, 팬덤 정치에 매몰돼서 흑백논리로 서로 깎아먹기 바쁜 거죠. 정치인을 추앙하는 순간, 그 정치인의 오류는 곧 나의 오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악마화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방어하려 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