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사회 시간, 한 권의 역사 자료가 인생을 바꾼다는 건 그때는 알 수 없었다. *** 출신인 나는 중학교 때 *** 역사 사건과 관련된 영상을 학교에서 처음 봤다. 담당 교사가 보여준 그 영상은 단순한 교육 자료가 아니었다. 실제 피해자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충격은 그날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훗날 돌아보니, 그 순간이 내 기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가치관의 첫 번째 가동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학교 교실은 기묘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북쪽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해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끼리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쓰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다. 왜냐하면 학교라는 제도가 제공하는 역사 서사, 교과서적 가치 체계가 지역이나 계층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교사의 해석을 들었다. 이것은 나중에 깨달으니 얼마나 특이한 구조였는지를 알게 했다.

당시는 인터넷도 거의 없었고 SNS는 꿈도 꾸지 못한 시대였다. 정보의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뜻이다. 학교 교육은 단순한 학과 과정이 아니라, 역사 해석과 정치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사실상 유일한 공공 플랫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독점적이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공평했는지는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배웠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사회 통합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뉴스를 보고, 정보를 취득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클릭한 것을 기억하고, 당신이 좋아할 만한 다음 콘텐츠를 제시한다. A가 본 "팩트"와 B가 본 "팩트"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각자가 보는 것이 모두 그 개인에게만 맞춤된 "팩트"가 된다. 거짓 정보와 사실이 같은 알고리즘 위에서 동등한 무게로 제시되고, 개인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강화된다. 확증편향의 악순환이 디지털 기술로 초고도화된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세대 간의 갈등이나 역사가 반복된다는 수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 분명히 과거에도 세대 충돌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질적으로 다르다. 개인화된 정보, AI가 콘텐츠 생산과 큐레이션 양쪽에 개입하는 구조,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현실 파편화를 만들고 있다. 글로벌 극우화의 확산, 음모론의 급속한 전파는 이런 구조적 특이점의 증거다. 과거의 도돌이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던 "하나의 현실"이 무수한 개인화된 현실로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 원문 발췌

'팩트'나 '근거'가 각자에게 퍼스널라이징되는 시대라면, 이것을 단순한 도돌이표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