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커뮤니티에 올린 와인 구매 글에 댓글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와인 베이스 칵테일 레시피를 몇 가지 추천해주었는데, 그중 하나를 저녁 요리하면서 한번 만들어봤다. 쇼비뇽 블랑에 탄산수를 붓고 라임 슬라이스를 띄우는, 재료도 간단하고 손도 거의 안 가는 조합이었다.
기대 외로 정말 맛있었다. 라임의 산미가 신선하게 올라와 와인의 상큼함이 살아나는데, 마실 때마다 입안에 새로운 층위가 쌓이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탄산이 들어가 있어서 자극이 없고 깔끔한데도 재미있고, 한두 잔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이상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한 모금은 신선함을 주고, 두 번째 모금은 또 다른 맛을 주고, 세 번째엔 또 다르다. 이런 변화가 반복되니 손이 계속 잔을 들었다.
칵테일의 진정한 가치는 밥상에 올렸을 때 드러난다. 매운 음식, 특히 목살 김치찜과 마주할 때 그 위력이 확실하다. 탄산이 들어가 있어서 매운맛이 혀 전체에 착 달라붙지 않고, 마실 때마다 옅어지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라임 산미도 음식의 자극을 부드럽게 잡아주니, 밥그릇을 계속 비우고 싶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조합이 매번 화제가 되는 이유를 이날 밤 비로소 온 몸으로 느꼈다.
칵테일 잔을 들고 밥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한결 여유롭다. 가만, 이게 무슨 마법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통 혼자 밥을 하면 서두르거나 허투루 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에 잔이 들려 있으니 자연스레 속도가 느려진다. 압력솥에 목살을 넣고 20분간 가압한 뒤, 불을 끄고 15분을 뜸 들인다. 이 타이밍은 특별한 레시피 지식이 없어도 거의 실패할 수 없다. 고기가 동파육처럼 부드러워지는데, 동시에 질려할 정도로 눅눅해지지 않는다. 젓가락으로 찢어지는 정도지만 밥 위에 올렸을 때는 모양이 남아있어서 먹기가 좋다. 이게 집밥의 매력 아닐까 싶다.
직접 담은 김치의 맛이 더해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두 번씩 집어 먹다가 어느새 그릇이 비어 있다. 김치는 생각할수록 신기한 음식인 것으로 보인다. 반찬 수준을 넘어 요리의 중심 재료가 될 수 있고, 그걸 활용하는 방법은 끝이 없다. 종류, 익힘 정도, 양념 하나하나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요리가 탄생한다. 게다가 미리 양념되어 있어서 한국인이 만들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게 매력인 것으로 보인다. 평생 먹은 음식인데도, 생각해보니 이렇게 유연하고 매력적인 게 또 있나 싶다. 혹시 외국인이 이 점을 깨닫기 시작하면, 한국 음식의 인기는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꿈꾸는 게 있다면, 수익을 따지지 않고 김치 전문점 하나를 차려보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여러 종류의 김치를 진열하는 게 아니라, 각 종류의 김치를 어떻게 즐기고 활용할 수 있는지 손님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말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상상이지만, 오늘 밤처럼 조용히 가만 앉아 무엇도 재촉하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오늘도 퇴근길에 로또 한 장을 사야겠다.
📌 원문 발췌
쇼비뇽블랑+탄산수+라임슬라이스인데, 간단함에 비해서 맛이 되게 훌륭합니다. 라임넣어 시원하게 마시니 상콤함도 배가 되고 덕분에 매운 음식에도 잘 어울리네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