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람의 갈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는 행동으로 옮겼다.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사슬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삶을 찾아 발걸음을 외국으로 돌렸다. 도착한 곳은 몽골의 초원이었다.

광활한 지평선이 펼쳐진 곳에서 사람들은 종종 '자유'를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자유인지 설명하려면 어딘가 막힌다.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이 되려면 어떤 구체적인 형태, 어떤 매개물이 필요하다. 저자가 발견한 그것은 '초원의 바람'이었다.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고, 산맥을 거침없이 넘고, 호수 위를 소리 없이 지나고, 만년설의 봉우리를 휘감는 바람. 그것을 보고 있자니 '아, 이것이 내가 원하던 자유의 모습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고 한다. 어떤 정해진 경로도 없고, 누가 방해할 수도 없다. 속박 없는 순수한 존재로 보였다. 저자의 마음은 그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불탔다.

그러나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람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바람은 항상 혼자라는 것이었다. 초원과 사막을 혼자 헤매고, 깊은 숲을 혼자 지나고, 높은 봉우리에서도 혼자 소용돌이친다.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다. 누군가 잡아줄 손도 없다. 자유란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이 대가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저자는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자유의 다른 이름이 고독이라면, 양쪽을 모두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따뜻함, 연결의 감각,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만 진정한 자유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쪽을 택하면 반대쪽은 버려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냉정한 등식. 세상에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절실한 진리와 마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저자는 자유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댓가로 고독을 껴안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몽골 초원에서 배운 선택이었다.

이런 갈등은 현대인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이 글쓴이의 경험담이 담은 메시지인 것 같다. 자유를 원하지만 연결감도 버리고 싶지 않다.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시작하고 싶지만, 경제적 안정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독립적이고 싶지만 누군가의 돌봄도 필요하다. 글쓴이에 따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둘 다 반쪽으로 남게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선택의 방식이 모두에게 동일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고독보다 연결을 우선할 수 있고, 어떤 이는 두 가지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 선택 자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몽골 초원이 이 사람에게 준 것은 추상적인 자유 개념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는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지를 직면하게 만든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고독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러다가 결국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고 그 댓가로 고독을 품기로 하였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