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대학의 남학생 수백 명이 매년 특정 여대의 축제를 방문해 집단 폭행과 추행을 일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약 13년간이나 반복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뉴스에도 보도되었을 정도로 공개적인 사건이었다.

'기차놀이'라는 이름의 조직적 성폭력

축제 때마다 수백 명이 일렬로 몰려들어 '기차놀이'를 한다며 소란을 피웠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외형적으로는 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은 여학생들에 대한 폭행과 추행이었다는 당시 피해 증언들이 있다.

타교 집단 방문 자체는 당시 대학 축제 문화에서 드물지 않았던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성폭력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전통"이라는 명목 아래 제도화·묵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이 단순한 일탈이 아닌 학내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캠코더로 기록한 저항

피해를 입은 여학생들은 현장을 직접 캠코더로 촬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SNS가 없던 시대였기에, 이것이 가능한 가장 직접적인 저항 수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목숨 위협을 느꼈다는 증언들이 전해진다. 극단적인 상황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촬영한 영상들은 언론사에 제보되어 뉴스로도 보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별 피해자들의 주장이 아닌 객관적인 영상 증거가 있었다는 점에서 사건의 심각성을 입증할 수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응원편지

더 주목할 점은 그 대학의 여학생들이 보낸 응원편지였다는 것으로 보인다. 본래 같은 학교 남학생들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껴 고개를 숙일 법도 하지만, 오히려 피해 여학생들과 연대를 선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계기로 양 대학의 여학생들이 손을 잡고 약 13년간 계속되는 저항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자"는 문구가 당시 이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성 간의 연대가 얼마나 강력한 저항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견도 있다.

제도적 처분의 한계

결과는 서글펐다. 가해 집단의 주동자 7명에 대해 학교가 내린 처분은 "방학기간 중 정학"이 전부였다는 보도가 있다. 약 13년간의 집단 성폭력, 수백 명의 피해자, 그리고 객관적인 영상 증거까지도 있었음에도 말인 것으로 보인다. 피해 규모 대비 가해자들에 대한 처분이 형식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록과 연대의 의미

이 사건은 훗날 대중들에게 그 대학 남학생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인식을 남겼다는 평가가 있다. 현재도 그 학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과 여성 간의 연대 행동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저항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저 조용히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하고 알리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여성들 간의 연대라는 교훈이 남은 사례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대 남학생 수백명이 몰려와서 ***대생들 폭행,추행하던 거임. 당시 많은 ***대생들이 캠코더로 기록하고 언론에 제보하는것으로 대응했는데 촬영하면서도 목숨에 위협을 느꼈다고함.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