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갈 무렵, 한 여행객이 지역 완행열차를 탔다. 목표는 단풍을 감상하는 것. 하지만 그해는 휴가 시즌이 끝난 후라 선로 정비 구간이 예상보다 많았다고 한다. 예정된 시간표보다 한 참 늦어졌다. 느린 열차, 그 자체가 여행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연을 악재로만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완행열차는 처음부터 시간을 재촉할 이유가 없는 여행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마주하며 나아가다 보면, 도착이 전부가 아니라 가는 길도 여행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특히 관광 성수기가 지난 비수기에는 철도 공사도 일정을 방해하기보다는 여유로움을 더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착지는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한 수도원이 있는 그곳은 오래된 건축들과 깊이 있는 역사로 가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물관에 들어가 과거를 헤아리고, 정원을 거닐며 가을 정취를 경험하고,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관광지라는 이름 없이도 자연스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저녁 무렵, 식사를 위해 찾아간 곳은 수도원 바로 곁의 식당이었다. 150년을 훨씬 넘게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아온 곳이었다고 한다. 한 손님은 농어를 튀긴 요리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토마토 소스와 바스마티 버터라이스가 곁을 지켰다. 튀겨진 농어는 신선함이 드러났고, 곁의 라이스는 아몬드가 들어가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풍미를 냈다고 전해진다.
같은 테이블의 다른 손님이 선택한 것은 돼지 등심이었다. 맥주 소스에 졸인 요리로, 자워크라우트와 보헤미안 찐빵이 곁들어졌다. 이 조합은 독일 남부와 중부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지역 음식 문화의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표현대로 이 돼지 요리는 한국의 보쌈과 유사한 식감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음식보다 더 깊은 유산이 있었다. 수도원 옆에 자리한 양조장은 400년을 헤아리는 역사를 품고 있다. 흑맥주가 가장 유명하지만, 한 여행객은 필스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산뜻한 산미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청량함을 지닌 맛이었다는 평가다. 비수기 여행지에서 마신 한 잔의 맥주는 얼마나 더 깊게 기억되었을까.
이렇게 한 주말의 여행은 끝을 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행 후 쌓인 피로를 제대로 푸지 못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 몸과 마음을 충분히 쉬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느린 완행열차, 백여 년의 전통을 지닌 식당, 네 세기를 견딘 양조장의 맥주 — 이 모든 요소는 일상 속 작은 탈출을 이루는 조각들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완행열차 타고 단풍구경 다녀왔는데, 휴가철이 지나서 선로공사하는 곳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수도원 바로 앞에 자리한 15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에서 농어튀김을 먹었어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