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극과 극이 만나는 순간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한 우주 팽창을 연구하던 우주론 학자들이 금속 안의 전자 움직임을 설명하는 고체물리학의 논리를 빌려 쓰고 있다.

사실 물리학에서 이 두 분야는 정반대다. 우주론은 빅뱅과 은하, 암흑 물질 같은 '가장 거대하고 텅 빈 시공간'을 다룬다. 고체물리학은 금속, 반도체, 초전도체 속 '가장 작고 빽빽한 전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최근 물리학계에서는 이 정반대인 두 분야의 수식과 개념이 서로 복사·붙여넣기되고 있다. 우주론이 직면한 난제들을 풀기 위해 고체물리학의 방법론을 수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환원주의의 한계

오랫동안 우주론은 환원주의를 따랐다. 세상을 더 작게 쪼개고, 더 근본적인 단위를 찾는다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론이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 깊게 들어갈수록 복잡성이 폭발해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체물리학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금속 안의 수억 개 전자를 일일이 추적하는 대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발상으로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것들이 뭉치면 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한 새로운 규칙이 나타난다는 관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창발(Emergence)'이라 부른다.

최근 우주론 학자들이 이 창발 논리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우주 공간도, 시간도, 심지어 중력까지도 근본적인 게 아니라 하부의 무수한 양자들이 뭉쳐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생각이 학계에 정착되고 있다.

시공간과 중력의 정체

첫 번째 개념은 '유효장론(Effective Field Theory)'인 것으로 보인다. 고체물리학자들은 금속 안의 복잡한 미시 세계를 다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거시적 규모에서의 행동만 수식으로 정리한다. 우주론도 이 논리를 채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주 초기의 인플레이션이나 암흑 에너지를 계산할 때, 거시 규모에서 창발된 물리 법칙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또 '준입자(Quasiparticle)' 개념이 있다. 고체 속 전자들이 집단으로 움직일 때, 마치 새로운 입자처럼 행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신 우주론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시공간과 중력 자체를 이 준입자처럼 본다. 미시 세계의 양자 얽힘 정보들이 뭉쳐지면서, 거시 세계에 공간과 중력이라는 현상으로 창발되었다는 논리로 취급되고 있다.

고체물리학의 대부 ***의 명언 "More is Different(많으면 달라진다)"도 우주적으로 확장된다. 초기 우주의 수많은 양자 요동들이 모이면서 거대 은하 구조로 창발되었다는 추적인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방정식 하나가 우주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무수한 무작위성이 쌓여 새로운 우주적 규칙을 만들어냈다는 관점이 정착하고 있다.

실험실의 미니 우주

여기서 전환이 일어난다. 우주를 직접 만질 수 없으니, 물리학자들은 초전도체나 액체 헬륨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삼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SSB)'은 초전도체에서 전자들이 쌍을 이루면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는 방식을 설명한다. 우주의 진공도 텅 빈 게 아니라 응축물로 가득 차 있어서 입자에게 질량을 주고 시공간을 팽창시켰다는 설명으로, 초기 우주의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는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키블-주렉 메커니즘(Kibble-Zurek mechanism)'도 주목할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액체 헬륨이 급격히 냉각될 때 내부에 미세한 격자 결함이나 소용돌이가 생기는 방식이 있다. 놀랍게도 이 메커니즘이 빅뱅 직후 우주에서 은하 씨앗이 된 우주끈 같은 구조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암흑 물질 설명에는 '그로스-피타에프스키 방정식'이 쓰인다. 극도로 가벼운 입자들이 우주적 규모로 뭉쳐 거대한 양자역학적 상태를 이룬다는 가설을 계산할 때다. 고체물리학 교과서 첫 페이지의 초유체 이론 수식이, 먼 우주의 거대 구조를 설명하는 데 그대로 복사·붙여넣기되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 세 메커니즘은 모두 수식이 물리학계에 먼저 공유된 후, 훨씬 나중에 우주론에서 물리적 의미가 맞아떨어진 것들인 것으로 보인다. 즉, 고체물리학의 수학적 틀이 우주의 깊은 구조까지 설명하는 열쇠가 되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분야 간 개념 수입이 단순한 참고를 넘어, 실제로 다층적인 현실을 아우르는 보편적 구조를 드러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패러다임

극과 극의 융합이 의미하는 바는 깊다. 오랫동안 물리학은 근본을 찾으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작게, 더 근본적으로 내려가면 우주의 비밀이 보인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물리학은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근본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깨달음인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것들이 모일 때, 전혀 새로운 규칙이 나타난다. 우주 공간 자체도, 시간도, 심지어 중력도 그렇게 창발된 현상일 수 있다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현대 물리학의 가장 흥미로운 움직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 원문 발췌

우주 공간, 시간, 심지어 중력마저도 사실은 근본적인 게 아니라, 고체물리학처럼 하부 구조에서 '창발'된 현상일 뿐이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