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의 최근 논평을 요약하면 이렇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뭔가를 주도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는 특정 혐의(친일파 여부)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 겉으로는 그럴듯한 논리처럼 들릴 수 있다. 객관성을 강조하고 증거의 수위를 높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기준을 다른 맥락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그 위험성이 드러난다.
구체 사례를 생각해보자.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독립군을 체포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인물이 있다고 하자. 그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고,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면? 그 경우도 주도성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범주에서 제외할 수 있을까.
역사 연구와 학계의 기록을 보면 답은 명확하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명령을 받아 협조한 자, 실행 과정에서 능동적·수동적으로 참여한 모든 자들이 친일파 범주에 포함된다. 주도성의 정도는 책임의 경중을 판단하는 요소일 수 있지만, 책임 자체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게 역사적 관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총수의 논리는 그 기본 전제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한국 역사 해석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법적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6년 벌어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정권의 군부 고위 관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유사한 변명을 시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나는 지도자의 명령에 따랐을 뿐, 개인적으로는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국제 법정은 이를 면책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협력자, 실행자, 묵인자 모두가 책임 범위에 들어온다는 원칙이 그때 확립됐고, 이는 현재까지 국제적 표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역사의 기록인 것으로 보인다.
뉘른베르크 원칙은 단순한 역사 해석이 아니라 국제법의 기초가 됐다.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범죄 재판, 인권 침해 소송 등에서 적용되는 법적 기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공인이 같은 시대에, 같은 논리로 그것을 거스르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 해석의 차이를 넘어선다는 평가다.
또 다른 관점도 있다. 같은 인물의 이전 논란들을 보면 같은 식의 논리가 반복된다고 전해진다. 골프 관련 논란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방어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일관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오는 평가는 한결같다: 차라리 침묵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 왜일까.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 논리의 더 근본적인 결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인의 발언—특히 역사적 판단이 담긴 발언—은 그만큼의 책임을 지닌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평이 비판받는 이유는 총수 개인의 도덕적 입장 때문만은 아니다. 그 판단을 정당화하려는 논리가 역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확립된 국제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입장을 풀어 설명하려 할수록 더 깊은 논리적 구멍이 드러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주도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한거같지는 않으니 친일파라고 보기 힘들다는 논리면, 일본군 명령에 따라 독립군을 체포하는 데 협조한 사람들도 친일파가 아니란 말인가?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