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왔다. ***에 입원한 시어머니의 허리 수술이 2주 전이었다. 그동안 거의 매일 저녁을 찾았다. 공장 교대근무라 평일은 일을 마친 뒤 가능한 한 자주 들르려고 했고, 주말엔 낮시간을 이용해 있다 왔다. 2주 중 하루를 제외하곤 모두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하루는 야간근무라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병원 갔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물었다. 일상적인 질문처럼 들렸는데, 뭔가 다른 톤이 섞여 있었다.
"응, 저녁 드시는 거 보고 왔어."
그 대답 다음이 달랐다.
"매일 가네."
질책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매일 다녀온 것이 문제가 되는 건가? 남편은 단순하게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술하셨으니까."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달랐다.
"작년에 우리 엄마 입원했을 땐 두 번 왔잖아."
여기서 뭔가 꼬였다. 작년 장모님 입원 때 자신이 두 번 간 건 맞다. 하지만 그땐 ***에서 왕복으로 7시간이 걸렸다. 장모님 병원은 ***에 있었고, 아내의 형제들이 ***에 거주 중이어서 매일 들렀다.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이를 설명하자 아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거리는 핑계지. 마음이 있으면 가는 거야."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남편은 물었다.
"그럼 당신은 우리 엄마 병원 몇 번 왔는데?"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병원은 단 한 번만 왔다. 수술 당일뿐이었다.
"나는 애들 봐야 되잖아."
그 말은 옳았다. 아이 둘을 돌보는 책임이 있다는 뜻이었고, 남편도 그걸 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한 번도 이 부분을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이 질문은 대화의 끝을 알렸다.
생각해보면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 장모님이 퇴원할 때 남편이 연차를 내고 ***로 올라가 짐을 옮기고 직접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장모님은 감사의 표현으로 "당신 같은 사위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손을 잡아주셨다. 그때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그걸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부분도 있었다. 장모님 입원 때 병원비의 절반을 남편이 냈다. 처남들은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이 부분도 아내에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냥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더 심각한 건, 아내가 처형에게 한 말이었다. 남편이 우연히 들었는데 아내가 처형과의 통화에서 "요즘 남편이 시댁밖에 몰라. 우리 엄마 입원했을 때랑 완전 다르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기여는 모두 희석되고, 대신 '시댁만 챙기는 남편'이라는 이미지만 외부로 퍼져 나갔다.
이 갈등의 핵심은 병문안 횟수가 아니었다. 숫자로만 비교되고, 상황의 맥락은 무시된 채 남편의 헌신이 일방적으로 평가절하되는 느낌이었다. 거리, 형제의 유무, 근무형태 같은 조건들은 모두 무시되고 오직 '몇 번 갔는가'라는 단순한 지표로만 판단되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또 병원에 가야 한다. 벌써부터 무언가 들을 것 같다. 시어머니 퇴원까지 앞으로 일주일이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계속 눈치 보며 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부부 사이에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남편은 그렇게 장모님 입원을 받아들였고, 아이 돌봄에 집중하는 아내를 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합의는 양쪽이 상대의 기여를 인식할 때만 작동한다. 지금 아내의 태도는 남편의 노력을 숫자로 환산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였다. 남편이 장모님을 위해 해온 모든 것들—병원비, 연차, 시간—은 사라지고 '횟수'만 남겨졌다. 이게 과연 옳은 건지, 남편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단지 누적된 억울함과, 그것이 외부로 샌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만 남아 있었다.
📌 원문 발췌
아내가 처형한테 전화로 하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요즘 남편이 시댁밖에 몰라 시어머니 때랑 완전 다르다니까.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