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을 때는 맨붕 상태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적발된 범인의 휴대폰에서 내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과 사진이 나왔다는 설명이었다. 경찰관은 구체적으로 그날 내가 입었던 옷의 색깔까지 짚어주며, 개찰구를 통과하는 내 모습이 맞는지 물었다. 사진을 보니 정말로 내가 맞았다.

다른 사건의 신고로 적발된 범죄자의 기계에는 수많은 피해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경찰은 조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미 당한 일도 끔찍한데, 굳이 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 외에도 여러 명의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피해자가 신고에 응할수록 범죄자를 더 강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결국 조사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수락한 조사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경찰은 조사 때 내 동영상을 직접 함께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영상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드는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모르는 순간에 누군가의 카메라에 갇힌 내 모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왔다. 민낯 같은 순간이 기계 속에 보관되어 있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조사에 응하기로 한 결정이 정말 맞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사 대신 그냥 조용히 있을 걸 하는 후회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의 한마디가 날아왔다.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마라"는 말이었다.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 같은 피해자가 어떤 옷을 입었든 상관없이 발생하는 범죄의 본질을 외면하는 발언이었다. 범죄자의 렌즈는 피해자를 선별하지 않는다. 어떤 옷을 입든, 어디를 가든, 그것이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전형적인 2차 가해 발언이었다. 마치 내가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처럼, 마치 내가 타인의 카메라에 노출된 것이 내 책임인 것처럼 만드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었다. 범죄자가 저지른 행동의 피해도 견뎌야 했지만, 이제 가족이라는 주변 사람까지도 나를 탓하는 시선 속에서 자책하게 되었다. 신고를 했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결정이었는지 자꾸만 의심스러워졌다. 경찰 조사는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필수 절차이지만, 내가 그 과정과 그 이후에 느껴야 하는 2차, 3차 상처까지는 사회가 함께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신고했을 때 받게 될 정서적 부담, 조사 과정에서의 수치심, 그리고 가족마저 나를 탓하는 악순환—이 모든 것들이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게 하고, 결국 침묵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원문 발췌

조사 받을때 제 동영상을 보여주나봐요 수치 스러울거 같은데 괜히 조사 받는다 했나 후회도 좀 됩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