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0만 원. 남편이 제시한다는 생활비의 규모다. 초등학생 두 명을 양육하는 아내는 이 숫자 뒤에 숨은 거래를 질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돈이 정말 가사노동의 전담을 사는 것일까.
현실의 아내는 바쁘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챙기고, 밥을 차리고, 집을 치운다. 시간을 내서 알바까지 한다. 그 와중에 남편은 생활비를 주는 자신을 마치 모든 책임을 진 사람처럼 행동한다. 동시에 집안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이것이 암묵적 계약처럼 작동한다면,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무한정으로 느껴진다. 더 이상해지는 것은 작은 요청들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밖으로 나갈 때 쓰레기 봉투 하나 정도 버려 달라는 부탁이, 마치 거창한 욕심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일정을 들어보면 한숨이 나온다. 매일 약속이 있다고 했고, 귀가는 새벽 1시반에서 4시 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돌아온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말은 반복된다. 시댁 여행도 이해해 달라, 증조할머니 방문도 이해해 달라. 자신의 시간은 절대다. 반대로 아내가 친구를 만나려 하면, 아내를 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수록, 남편의 거부는 더 가혹해 보인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피해자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혹시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건 아닐까.
경제 기여의 불균형이라는 게 있다면, 이 경우는 복잡하다. 남편이 사업을 할 때 아내는 초기 자금을 상당히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생활비는 그 투자 덕분에 흘러나온다고 봐야 한다. 남편이 "내가 돈을 벌고 있으니 가사는 너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려면, 아내의 경제 기여를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경제적 역할이 이미 쌍방향이라면, 생활비 숫자만으로 모든 불균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시댁 관계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남편은 어머니와 이모들을 각별하게 대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쯤 함께 여행을 다녔다. 올해는 다르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모들과 그들의 자녀들끼리만 가는 여행이라고. 아내는 빠진다. 혹은 아내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가족 계획에서 아내를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다른 여성과의 대화나 친절 같은 미묘한 부분까지 언급되면, 상황은 더욱 흐릿해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공감이 일어날까. 생활비 400만 원의 크기가 아니다.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도 작은데"라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를 버려 달라는 것, 친구를 만날 시간을 달라는 것, 가족 여행에 함께 가는 것. 이것들을 욕심으로 치부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생긴다. 여기서 주목할 신호는, 아내가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건가"라고 스스로 의심하도록 만드는 그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심이 필요한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 의심 자체가 이미 관계의 불균형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생활비를 400만 원 받으면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고, 매일 늦게 들어오는 생활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남편은 항상 저에게 다 제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