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 느긋함이 매력이었다. 나는 코로나 이후 헬스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끌렸다. 정반대 기질이 주는 안정감. 9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체형이 눈에 띄게 변했고, 함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모습이 보였고, 하루종일 땀에 젖어 있었다. 공원 산책도 벤치에 앉은 채 시간을 때우려 했다. "살 빼야지" 하는 말은 반복했지만, 실천은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결국 마운자로를 처방받게 됐고, 7주 만에 3kg가 줄었다. 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 2시가 됐을 때 그가 치킨을 뜯고 있었다. 의약품도, 주변의 권유도 그의 선택을 바꿀 수 없어 보였다. 처방약은 식이 절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효과가 유지되는 구조인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가장 남겨져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건 단순한 체중 관리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우선순위, 미래상까지 다르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운동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건강을 현재의 즐거움으로 미루는 사람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절하는 사람. 그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헬스장에서 본 남자들. 그들을 보며 느낀 설렘이 뭐였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외도 욕구나 외모 집착은 아니었다. 그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파트너"에 대한 갈망이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 나와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 전에 자꾸만 묻게 된다. 상대를 상처 줄까봐. 그를 충격에 빠뜨릴까봐. 그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데 내가 칼을 휘두르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든다. 헤어지면 쓰레기일까 봐 자책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9년을 함께했고, 여러 번 대화했고, 병원 처방까지 시도했다. 그럼에도 돌아온 건 새벽의 치킨뿐이었다. 상대를 탓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불일치는 충분히 정당한 이별 사유가 될 수 있다.

이번 주 내로 말을 꺼낼 계획이다. 그의 자존감 때문에 더는 미룰 수 없다. 오히려 명확함이 둘 다에게 자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방향이 다르다"는 객관적 현실을 전할 것이다. 구체적인 탓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로.

9년은 길었다. 하지만 남은 인생은 더 길다.


📌 원문 발췌

어느순간 몸무게가 170/95kg가 되니깐 잠깐 어디 걷는것도 힘들어하고 땀을 무진장 흘려요. 매일 살뺀다 살뺀다해놓고 운동은 아예 안하고 제가 뭐라하니깐 마운자로 처방받네요. 새벽 2시에 치킨뜯는거 보고 정내미가 바닥까지 떨어졌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