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한 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결혼 십구 년을 함께한 주부에게 올해 초는 예상 밖의 손님을 데려왔다. 남편의 막내 시누이였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시누이가 ***으로 대학을 왔는데 기숙사 배정이 떨어졌다. '원룸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는 약속으로 3월에 집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문제가 없었다. 시누이는 밝았고, 말씨도 예뻤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열아홉 살 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리듬이 맞지 않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생활 습관이었다.
집의 규칙은 저녁 일곱 시에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다. 아들도, 남편도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시누이는 그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다. 밤 열한 시쯤 들어오더니 라면을 끓인다. 냄비째 들고 방으로 들어가 먹은 뒤, 다음 아침까지 책상 위에 내버려둔다. 준비해둔 반찬은 한 번도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냉장고에 들어온 배달 음식은 밀폐되지 않은 채 보관된다. 그 냄새는 스며든다.
밤 열두 시를 넘어서도 샤워를 한다. 화장실이 아들 방 바로 옆이어서 물소리에 깬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때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거슬리는 건 빨래였다.
주부가 지켜온 규칙이 있다. 수건은 수건끼리, 속옷은 속옷끼리 따로 돈다. 결혼할 때부터 지켜온 방식이고, 남편과 아들도 안다. 그런데 시누이는 섬세함이 없다. 세탁기에 다 집어넣는다. 아이의 청바지가 수건과 함께 돈다. 그 광경을 본 날, 주부는 수건을 모두 다시 삶아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에게 넌지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며, 본인이 가르쳐주면 어떻겠냐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왜 내가 스무 살 넘은 시누이의 생활 습관까지 교육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은 고등학생 아들 하나 키우는 것도 벅찼다.
지난주, 주부는 냉장고에 메모를 붙였다. "배달 음식은 밀폐용기에 담아 넣어주세요. 냄비는 쓰고 바로 싱크대에. 수건은 따로 모아주세요." 작은 글씨의 정중한 메모였다.
그 메모가 초래한 건 예상 밖이었다. 시누이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고 한다. '언니가 나 나가라는 거냐'고. 그 메시지를 본 남편은 주부를 보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라고 물었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난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잠깐'에서는 어떤 규칙도 강압으로 읽힌다. 누가 집의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가 모호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규칙을 정하려는 시도는 곧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친정 여동생이 2개월 묵었을 때는 달랐다. 그 사람은 원래 정리정돈을 잘하는 성격이어서 설명이 필요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갈등이 주부의 까다로움 때문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어머니는 전화로 "우리 막내 좀 잘 봐줘"라고 하신다며 반찬값도 보내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이건 돈 문제가 아니다.
메모를 붙인 게 정말 정 없는 짓일까. 자신이 이상한 건 아닐까. 그 질문의 근저에는 사실 다른 문제가 있다. 동거의 기한과 역할을 처음부터 명확히 하지 않으면, 그 공간 안에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가 자연스럽게 흐려진다는 것으로 보인다. 규칙은 압박이 되고, 요청은 방출로 들린다. 이것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구조적 경계의 부재가 드러나는 방식인 것 같다.
📌 원문 발췌
지난주에는 냉장고에 메모를 붙였어요. 그랬더니 시누이가 남편한테 카톡으로 언니가 나 나가라는 거냐고 보냈대요. 그걸 남편이 저한테 보여주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하더라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