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제목도 작가도 모르는 책. 그런 책이 하나 있었다.

군대 시절 도서관에서 꺼낸 책이었다. 첫 장부터 시작했지만, 중반쯤 되니 내용이 까다로웠다. 문체도 답답했고, 앞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부대에서의 일과, 제한된 시간, 집중력 부족. 모든 게 겹쳤다. 결국 나는 결말만 대충 훑고 반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로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책이 떠올랐다. 내용이 생각났다. 분위기가 생각났다. 그때 느낀 답답함, 무거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놓친 것 같은 죄책감까지. 근데 제목이 없었다. 작가도 없었다.

첫 시도는 구글 검색이었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떠오른 줄거리를 키워드로 만들어 검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몇 번을 시도해도 정확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나오는 것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뿐이었다. 제목이 없으니 작가도 모르니, 키워드 검색의 한계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책은 검색 알고리즘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며칠 고민하다가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책은 계속 떠올랐다. 몇 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마치 뭔가 미해결 과제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AI 챗봇에 물어보는 거였다. 기억 속 줄거리를 그대로 던져 줬다. 배경 시대, 등장인물의 이름, 기억나는 장면들. 반응은 빨랐다. AI는 여러 책의 제목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딘가 다였다. 내가 찾던 책이 정확히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혹은 정말 맞는 책인데 자신감이 없었을 수도. 애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 중요한 걸 깨달았다. 첫 질문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재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더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억났던 분위기, 시대 배경, 주인공의 나이대, 문체의 특징 같은 걸 더 풀어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치 누군가를 설명하되, 외형뿐 아니라 성격까지 더해가듯이. 이번엔 달랐다. AI는 바로 그 책을 찾아줬다.

***의 ***이었다. ***의 역사를 다룬 소설. 시대소설이었고, 담담하면서도 무거운 내용이 특징이었다. 군대에서 느낀 그 답답함, 그 인상이 정확히 맞았다. 오랜 시간 '뭔가 놓친 책'으로만 남아있던 것이, 갑자기 구체적인 형태로 돌아왔다.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단순히 더 빠르거나 똑똑해진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이번 경험이 보여준 것은 다른 변화였다.

구글 검색은 키워드의 정확성에 의존한다. 제목을 알아야 하고, 작가를 알아야 하고, 적절한 단어를 조합해야 한다. 하지만 AI 챗봇은 다르다. 대화 속에서 점점 더 정확한 정보를 끌어낼 수 있다. 불완전한 첫 질문도 괜찮다. 그다음 질문으로 좁혀갈 수 있으니까. 이게 이번 경험의 핵심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것'을 찾는 방법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추상적인 기억만 있어도, 그걸 풀어놓으면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구글에 검색해봐도 제가 찾던 줄거리의 책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방금 전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니 AI가 바로 찾아줬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