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오빠네 둘째 돌잔치가 있었다. 학교 행사 때문에 늦게 도착했고, 봉투는 미리 준비해서 엄마에게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30만 원. 조카를 축하하는 마음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마디가 묘한 것으로 전해진다. "너 새언니한테 서운한 게 있냐"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물었더니, 새언니가 시어머니에게 직접 언급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가씨는 큰애 돌 때는 50 하더니 둘째는 30이네요"라고.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놀라웠던 건 몇 가지였다. 3년 전 금액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그걸 시어머니에게까지 꺼냈다는 것. 상황은 3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남편이 이직하면서 연봉이 줄었다. 아이도 하나에서 둘이 됐다. 그래도 조카 돌이니까 성의는 하자 생각해서 30만 원을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나는 새언니가 우리 둘째 돌 때 보낸 20만 원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금액으로 따지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다. 그냥 감사하다고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언니가 명절마다 우리 아이들 용돈을 줄 때마다 봉투 두께를 괜히 보게 되는 자신이 미워졌지만, 그것도 내 마음속에만 남겼다.
작년 엄마 칠순 때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들이 비용을 모을 때 새언니가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맞벌이니까 조금 더 내도 되지 않냐." 나는 웃으면서 10만 원을 더한 것으로 전해진다. 침묵과 양보가 가족을 지킨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엔 침묵이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는 중간에서 난처해하며 "20만 원 더 보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니가 손해 보는 게 집안 조용한 거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조카를 차별하는 고모처럼 집안에 낙인찍히는 느낌이 들었다. 침묵했는데 왜 나만 손해를 보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황당했던 건 그 얘기가 이미 이모네까지 퍼졌다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이모가 카톡으로 물었다. "요즘 많이 힘드냐." 돌잔치 봉투 하나로 집안에서 형편이 어려운 시누이가 돼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해가 됐다. 새언니의 지적이 직접 전달되지 않고 시어머니를 거쳐, 엄마를 거쳐 내게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손해 보는 게 집안 조용한 것"이라며 조정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쪽이 아니라 지적받은 쪽이 추가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 우리도 20만 원 받은 거 얘기하자." 말렸다. 정말 싸움이 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엄마와 시댁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지쳤다.
결국 그 날 퇴근길에 20만 원을 더 이체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난번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챙겼어요."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어머, 아가씨, 뭐 이런 걸" 하고 하트 이모티콘 하나.
버스 정류장에서 그 하트를 한참 들고 서 있었다. 이 돈이 정말 조카를 축하하는 것일까. 아니면 뒷말을 막는 값일까. 그 물음이 무거웠다. 나는 새언니의 과거 봉투 금액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반드시 관계를 보호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제 안다. 침묵과 양보가 반복될수록, 다음 번 요구의 기준선은 올라간다. 그리고 그 높아진 기준을 감당하는 비용을 누가 지는지가 문제다. 생각하다 보니 버스 두 대를 그냥 놓쳤다.
📌 원문 발췌
아가씨는 큰애 돌 때는 50 하더니 둘째는 30이네요. 전 그거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어요. 이 돈은 조카 축하금인지 뒷말 막는 값인지 모르겠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