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날, 12년간의 며느리 생활이 한 문장에서 폭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 12년 차 장남 며느리인 글쓴이는 명절마다 정해진 루틴을 따르고 있었다. 전날 시댁에 가서 자고, 새벽부터 시어머니를 돕고,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한다. 그리고 일정을 맞춰 친정이나 다른 약속으로 떠난다. 아이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아이들을 챙겨가며 먼 시댁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당연해져 있었다.
시댁은 집에서 차로 1시간 반~2시간이 걸린다. 시동생 가족은 시댁에서 20분 거리에 살고 있다. 아이가 셋이지만, 이제 어릴 때처럼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나이는 아니다. 중학생, 초등학생, 그리고 7살.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였다. 글쓴이는 전날 시댁에 가서 전을 부었다. 시동생도 함께 전을 부은 뒤, 저녁 5시경 찜질방을 가려고 가족 모두 나갔다. 글쓴이는 시댁에 남아 자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밥을 준비했고, 글쓴이는 곁에서 도왔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 때다. 시어머니가 글쓴이의 아이에게 시동생 아이한테 전화해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 와?" 물었더니 돌아온 말은 "엄마 자고 있어"였다. 글쓴이와 시어머니는 웃으면서 "빨리 와~"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화장실에 오래 있다가 밥을 늦게 먹었다. 글쓴이는 남편이 밥을 먹는 동안 이미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남편과 시동생이 성묘를 가면 바로 다음 약속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밥을 마친 남편은 안마의자에 누웠다. 글쓴이는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평소에도 밥 먹자마자 눕는 남편의 습관이 불편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몇 번 일어나라는 눈치를 줬다. 글쓴이는 나중에 자신도 이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수 있다. 남편은 "아침부터 짜증나게 한다"고 투덜거렸고, 글쓴이는 시댁에서 싸울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9시가 넘어서 시동생네가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들이 차에서 내릴 때, 글쓴이가 전화 통화했던 아이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누군가 늦게 올 때 흔히 하는 톤이었다. 시어머니도 바로 옆에서 웃고 넘어갔다. 그 순간부터 시어머니는 새로운 반찬을 꺼내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가 시동생네의 늦은 도착을 불편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과 시동생은 항상 둘이 함께 성묘를 간다. 시동생이 늦게 오면 남편도 기다린다. 그 덕분에 글쓴이 가족의 일정도 밀린다. 친정에 가서 점심을 함께 먹으려면 시댁을 10시 전후에 떠나야 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글쓴이가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 항상 아침 준비 다 끝나고 늦게 오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말 안 하니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싸우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불평일 뿐이었다. 남편은 한숨만 쉬고 대답하지 않았다. 글쓴이는 덧붙였다. "우리 집에서 출발해도 그 시간에는 도착하겠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다가 거의 도착할 무렵, 남편이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려고 휴대폰을 켰다. 순간 차 스피커에서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글쓴이는 원래 큰 소리에 민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깜짝 놀라 인상을 쓰며 남편을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아침부터 계속 지랄하는 거 참고 있는데 왜 자꾸 지랄이냐." 글쓴이는 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는 길에 계속 따졌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큰 소리에 놀라서 본 것뿐이었다. 친구 만나기 직전이라 더는 싸우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날 밤, 둘만 있을 때 글쓴이가 다시 물었다. "대체 내가 아침부터 뭘 그렇게 했길래?" 남편은 처음엔 말하기 싫다고 했다가, 계속 물으니 입을 열었다. "애가 셋이면 몇 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오는 줄 아냐?" 시동생네를 감싸는 말로 들렸다. 글쓴이가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 애가 셋이면 늦게 와도 되는 거야?" 남편은 글쓴이의 말을 역으로 던졌다. "우리 집에서 9시까지 오려면 몇 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글쓴이는 즉시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7시지." 실제로 아이 둘이 훨씬 어렸을 때도 그보다 일찍 출발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정작 그날 아침 시동생네 아이들은 일어나 있었다. 엄마만 자고 있었다. 그 다음 남편이 또 다른 것을 꺼냈다.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시어머니가 글쓴이를 보고 "쟤는 신랑이 언제 갈 줄 알고 혼자 벌써 준비 다 하고 옷 입고 돌아다니냐"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었다. 글쓴이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은 단정적으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가 너한테 말했는데 넌 쌩깐 거잖아."
글쓴이는 계속 그런 말을 못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들었다면 반응했을 텐데. 하지만 남편은 글쓴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시어머니를 무시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 깨지는 듯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의 서운함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2년간의 누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날 시댁 합숙, 새벽 준비, 반복되는 일정 지연까지. 그런데 남편은 그것을 '지랄'이라고 묵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원가족을 기본값으로 선택한 태도였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쌩깐 거잖아"라는 말 속에는 남편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시동생네가 늦게 오는 것도, 그에 대한 불만도 결국 표면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소통이 아니라 경계인 것 같다. 원가족과 배우자 사이에서 남편이 누구의 말을 들을지, 누구를 우선할지. 그것이 모든 것을 나누는 선이 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원문 발췌
정작 그날은 7시 넘어서 전화했을 때 시동생네 아이들은 일어나 있었고 엄마는 아직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기 거의 직전에 남편이 갑자기 '아침부터 계속 지랄하는 거 참고 있는데 왜 자꾸 지랄이냐'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