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처부가 교통사고를 입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거동이 많이 불편해져서 병원에서의 회복 기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가족사였을 텐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할 분담이었다.

아내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다. 병원에 매달렸고, 집안일과 아이 관리는 전부 글쓴이에게 넘어갔다. 당시 글쓴이는 구직 중이었다. 일하지 않으니 시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정해진 것처럼 모든 책임이 모였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을 챙기고, 빨래를 개고, 병원 심부름을 하고, 저녁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 이 반복이 하루 종일 계속됐다. 처남이나 처제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 바쁘다며 주말에 한 번씩만 들렸다. 구직 활동도 병행해야 하는데, 면접 일정을 잡기조차 눈치가 보였다. 아내에게 벅찬 마음을 조심스레 꺼냈을 때 돌아온 건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냐"는 서운함이었다. 자신의 힘든 마음을 말했는데 도리어 책망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삭이며 버티던 와중, 명절이 왔다. 처가 식구들이 병문안을 겸해 모였다. 그 자리에서 글쓴이는 자신이 치른 몇 주일의 시간을 느껴본다. 모두는 아내를 향해 "정말 고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힘들었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글쓴이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밥상 차리기부터 아이를 봐주는 것까지, 모든 일이 다시 자신에게 당연하게 넘어갔다. 인정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건만, 눈에 띄지 않는 수고가 쌓이는 경험은 다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역할—병원 방문, 울어주기, 감정적 동반—만 수고로 인정되는 것 같았다. 반면 식사 준비, 아이 케어, 집안 관리는 마치 처리해야 할 당연한 일처럼 취급됐다. 구직 중이라는 상황이 "시간이 있으니까 당연히 한다"는 무언의 전제로 작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글쓴이는 진심으로 처부가 빨리 회복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누군가는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족 위기는 모두의 위기여야 할 텐데,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이 가장 덜 위로받는 역설이 이 상황의 핵심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글쓴이의 마음은 지쳐갔다. 처부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자신이 감당하는 몫에 대한 인정 없음이 쌓여갔다. 당장 구직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 더 말을 꺼냈다가 또 "이 상황에 그런 말이냐"고 받아들여질까봐, 침묵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 위기 속에서 실질적 부담이 특정인에게 쏠리는 현상은 흔하다. 특히 구직 중이거나 아이를 더 돌보는 쪽이라는 이유로, 무언의 기대가 한쪽에 집중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그 역할을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아내처럼 눈에 띄는 감정 표현 없이도, 집에서 묵묵히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감사 한 마디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힘들다고 말할 때 그것을 받아주는 것, 그게 함께라는 의미가 되는 게 아닐까.


📌 원문 발췌

문제는 이 모든 걸 저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처가 식구들 모였을 때 다들 아내한테만 수고했다고 하고 저한테는 그냥 당연하다는듯 별말이 없어서 솔직히 좀 서운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