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무릎 수술 때는 일주일 휴가를 내고 병원에 붙어 밤을 새웠다. 그 며칠 뒤 시어머니가 허리 디스크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글쓴이는 남편에게 "병원비 좀 보태드려"라고만 말했고, 본인은 직접 가지 않았다. 남편이 "친정은 일주일을 붙어있으면서 시댁은 전화 한 통도 안 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상황이 다르지 않나. 친정 엄마는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냐"고 되받아쳤다. 그날 부부 싸움은 꽤 컸다. 지금도 남편은 서운하다고 한다.

이 갈등이 갑자기 터진 게 아니다. 글쓴이는 결혼 15년을 거치면서 친정과 시댁을 대하는 '기준'을 명확히 정해놨다고 설명한다. 명절 때는 시댁을 먼저 다녀오는 순서를 지킨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고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친정 어머니에게 심각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휴가를 써서 대응한다. 시어머니의 건강 문제는 "남편이 알아서 챙기라"는 식으로 넘긴다.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부탁도 그렇다. 친정 어머니가 며칠씩 우리 집에 머물면서 손주를 봐주는 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돌봐주겠다고 나서면 불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친정에만 아이들을 맡긴다. 명절 선물도 마찬가지다. 친정으로 갈 때는 손수 마련한 반찬 여럿을 준비한다. 시댁으로 갈 때는 시장에서 산 과일 세트 하나다.

글쓴이는 이 체계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명확한 기준이 있어서 후일의 서운함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친정은 "나를 낳아준 분"이고, 시댁은 "남편의 가족이니 남편이 챙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논리다. 둘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결혼 초반에는 다 하려다 자신이 먼저 지쳐 병이 났던 경험이 있었다. 그 뒤로는 아예 명확한 분할이 최선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스트레스도 덜하고, 주변에서도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편 회사 동료의 부인들이 시댁 때문에 힘들어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본인은 이렇게 기준을 명확히 정해놓으니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집안일이든 뭐든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뒤탈이 없다는 게 본인의 신념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계속 서운해한다고 한다. 그 서운함의 핵심은 무엇일까. 명절 순서만 공평하게 지키고, 나머지 일상에서는 자신의 가족이 계속 '낮은 우선순위'로 취급되는 느낌일 수 있다. 매번 같은 말을 해도 상황이 반복되는 경험의 누적인 것으로 보인다. 15년간 이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글쓴이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선을 그었으니 공평하다"이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나는 계속 그 낮은 선 아래"라는 체감이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의 흥미로운 점은, 당사자가 '기준'이라는 중립적 단어를 써서 자신을 합리화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정한 기준이 실제로는 배우자의 누적 피로가 되진 않을까. "내가 명확한 기준을 정함으로써 편해졌다"는 것이, 다른 한쪽에게는 "나는 항상 낮은 우선순위"라는 암묵적 계약이 되어버린 셈 아닐까.

결혼 생활에서 친정과 시댁을 대하는 방식은 단순한 '생활 원칙'을 넘어선다. 그것은 "나의 출신 가족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가"와 "배우자 가족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사이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글쓴이가 느끼는 편안함이 남편에게는 소외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사례의 핵심으로 보인다.

부부 관계에서 '원칙'과 '감정'이 충돌할 때, 때로는 원칙을 한 발 물려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명확한 기준은 개인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만, 15년간 반복되는 남편의 "왜?"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일방적 침묵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남편이 그때 왜 친정은 일주일이나 붙어있으면서 시댁은 전화 한통 안하냐고 하길래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