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판 셜록홈즈를 보고 난 감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한 시청자가 있다. 영화를 재생하기 전, 이 사람이 기대한 것은 명탐정의 두뇌 싸움이었다. 논리적 추리의 쾌감, 미스터리가 풀리는 그 카타르시스 말이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상황은 통째로 반전된다. 화면엔 주먹질과 발차기, 폭발과 추락, 건물 붕괴 장면들이 연달아 터진다. 이 순간 시청자는 깨닫는다. 기대했던 추리물이 아니라 액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처음엔 당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반전이 오히려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감상글에서는 적혀 있다.
이 영화는 실제로 복잡한 평가 지형 위에 놓여 있었던 작품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2009년작은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원작의 추리 미스터리 전통을 기대한 팬층이 있었다. 한편 영화 비평가들은 이를 '원작 훼손'이라 지적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셜록 홈즈는 추리의 정교함이 매력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무시하고 액션에만 집중한다"는 식의 평론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극장 관객의 반응은 달랐다. 상업적 흥행 수치만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성공이었다. 덕분에 "이건 추리물인가, 액션물인가"라는 장르 정체성 논쟁은 개봉 이후 지금까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감상글 작성자는 이 논란 자체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 영화를 장르로만 분류하고 평가하기보다, '소재 자체가 무엇을 다루려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영화의 중심에 놓인 악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종을 시도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사회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관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게는 '실패'로, 관객에게는 '성공'으로 읽혀진 이유를 설명해 준다.
작품 속의 악당은 마법, 의식,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겉보기에 신비로운 설정들'을 무기 삼아 런던 시민들을 통제하려 한다.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뭉쳐 있게 만드는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이 조종이 어떤 실질적 근거 위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들 누구도 "이게 정말 사실인가"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비판이나 의문은 차단되어 있다. 있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추종뿐이다. "뭔가 신비로우니까", "권력 있는 자들이 이렇게 말하니까" — 이 정도의 이유로 대중은 따라 움직인다.
여기서 시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과거에 마법을 맹신했던 사람들의 심리와, 오늘날 특정 인물의 말, 특정 정책만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행동 방식이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는 통찰이다. 근거를 요구하지 않고, 증거를 검증하지 않고, 단지 그것이 '권위 있어 보이거나' '신비로워 보이면' 따라가는 인간 심리. 이것이 수백 년 전이든 현재든 본질은 동일하다는 지점을 이 영화는 영상 언어로 풀어낸다.
셜록이 사건의 배후를 벗겨내고 진실을 드러내는 여정은, 결국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이 정말인가'를 묻고 맹신의 실체를 꿰뚫으려는 노력과 닿아 있다. 영화가 액션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문제 삼는 것은 "누가 더 잘 싸우나"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믿는가.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개봉 초반의 평론가 평가가 낮았던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통상적 기대의 배반'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믿음'이라는 근본 문제를 건드리는 장치로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시간 투자 대비 회수할 것이 있는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원문 발췌
추리물인줄 알았는데 액션영화라서 좀 의외였었고, 저는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마법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을테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책이나 특정유명인 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