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를 훨씬 넘어섰는데도 머리 한 올 한 올이 까맣다. 흔히 이 나이대라면 이마 양옆부터 시작해 관자놀이, 목 뒤로까지 흰머리가 차올라온다. 같은 또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흰머리에 시달리고 있다.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고, 새치를 뽑는 것도 어느 정도 의례처럼 받아들이는 시기가 50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사람의 상황은 충분히 부러워할 만하다. 남들이 흔히 원할 만한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인은 오히려 그것이 답답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까매요"라는 단순한 표현 뒤에는,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숨어 있었다.

바로 새치다. 더 정확하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섞이는 과정 그 자체, 그리고 그 결과물인 회색빛이 돌아간 머리카락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의 눈에는 새치로 적당히 하얀색이 섞인 사람들의 모습이 한없이 '지적이고 멋있어' 보인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기에는 나이에 맞춘 자연스러운 외모라는 느낌도 포함된 것 같다.

강제적으로 염색약을 쓰지 않아도 시간이 만드는 그 톤의 변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뽑고 염색으로 감추려고 애쓰는데, 이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미학적으로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원래 머릿숱이 많으면서도 검은색과 흰색, 회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헤어스타일을 동경한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자신의 머리는 순수한 검은색 하나뿐인데, 그와는 완전히 다른 그 이중톤의 세계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 가해진다. 새치가 많은 사람들이 대머리가 될 확률이 낮다는 속설의 존재다. 생각해보면 그 속설이 사실이라면, 새치를 가진 사람들은 시각적 세련미뿐 아니라 '건강상의 이점'까지 동시에 누리는 결과가 되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I에 물어본 결과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근거가 없는 속설이라는 정정이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이 발생한다. 그 근거 없는 속설이 AI의 정정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부러움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번 형성된 로망이나 동경의 감정은 객관적인 사실 검증 이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대부분은 새치를 '문제'로 본다. 없애려고 노력하고, 뽑고, 염색약으로 덮으려고 에너지를 쏟는다. 새치는 '나이 먹었다'는 신호이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로 오래전부터 취급되어 왔다. 나이를 거부하거나 거부감을 주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반대편에는 그것을 동경하고 심지어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서 있다. 같은 신체 특징이지만,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외모에 대한 평가와 동경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누군가의 콤플렉스가 정확히 다른 누군가의 로망이 될 수 있다. 새치는 그 역전의 가장 명확한 사례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 원문 발췌

갠적으로 새치로 회색빛 머리카락이 된 사람들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제 눈엔 한없이 지적이고 멋있어 보이거든요. 새치가 많은 사람들이 대머리가 될 확률이 낮다는 속설도 있고...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