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엔 밥이 있다. 냉장고엔 반찬이 이미 준비돼 있다. 그런데도 잠자는 아내를 깨워 아침밥을 차려달라고 하는 남편. 한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쓴이의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준비된 밥을 차려내는 행위로 넘어가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밥을 담고 반찬을 담아내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일 텐데, 남편에겐 그것도 아내가 직접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글쓴이는 22년생 자녀를 혼자 돌보는 전업주부다. 아침잠도 많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깬다. 차려달라고. 왜 조용히 나갈 수 없는가?

밥과 반찬이 준비돼 있다면, 그걸 꺼내 먹는 행위는 요리라고 보기 어렵다. 차라리 '셀프서빙'에 가깝다. 그럼 왜 남편은 그걸 못 할까? 물론 많은 남편이 아침밥을 차려주기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정말 당연한가?

전업주부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부부마다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누군가는 '가사와 육아 수행'으로 정의하고, 누군가는 암묵적으로 '남편을 위해 밥을 차리는 것'까지 포함시킨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지는 결혼 초부터 명확히 대화하지 않는 이상, 서로 다른 기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부부의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남편의 행동엔 그런 암묵적 기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직접 경험해보면 알 수 있다. 새벽과 아침 시간대의 수면 한두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자녀 육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그걸 홀로 감당하면서 밤샘도 있고 낮 동안의 육아 고민도 이어지는 상황을 모르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명확하다.

22년생 자녀를 독박육아하는 중이라면, 수면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고 보인다. 그건 육아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 회복 자원에 가깝다. 밤새 아이를 돌보고, 낮 동안의 육아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침잠을 깨우는 행위가 얼마나 비용이 크고 불합리한지를 생각해보면 선명해진다. 대부분의 남편이 직장에서 8시간을 일하는 동안, 아내는 육아와 가사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마저도 밤에는 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밤에 울 수도 있고, 밤중에 깰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아침잠의 가치는 예상할 수 없을 정도다.

글쓴이는 남편에게 기대했을 것 같다. 아내가 고생한다고 부부가 함께 인식한다면, 실제로 그에 맞는 행동이 따라와야 하지 않을까. '고생한다고 푹 자라'는 말이 있었다면, 그걸 실행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생을 '안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아침밥을 차려달라고 깬다.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대비가 있다. 글쓴이는 다른 남편들을 언급한다. '어떤 남편들은 푹 자라고, 아내 깰까봐 조용히 아침을 먹고 나간다'고. 그런 남편들은 밥솥과 냉장고의 존재를 안다. 반찬이 냉장고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를 깨우지 않는 선택을 한다. 왜냐하면 배려라는 게 무엇인지 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아내의 수면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조용함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담겨 있는가. '아내가 피곤할 것 같으니 깨우지 말자', '밥과 반찬이 있으니 내가 챙겨 먹으면 되겠다', '아침잠이 아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 이런 사고의 흐름이 있어야 그 행동이 나온다. 그런 남편들은 아내가 준비한 밥과 반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걸 감사하면서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 활용한다.

이건 아침밥 문제로 보이지만, 실은 부부 간에 '전업주부'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밥솥이 충분하다면, 그게 충분해야 하지 않을까.


📌 원문 발췌

밥은 밥솥에 있고 반찬도 냉장고에 만들어 넣어둠. 그냥 꺼내서 차려먹으면 되는데 그게 힘든지.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